장마를 앞두고 아침부터 내리쬐는 뙤약볕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하니 신록이 우거진 숲길이 펼쳐졌다. 사진은 구두리오름 숲길을 걸으며 길잡이의 설명을 듣는 탐방객들. 강희만기자
오름·숲·목장길·둘레길까지 이어지는 코스달달한 산딸기 따먹으며 어릴 적 추억 되새겨제주 목축문화 상징 유물'잣성'눈길 사로잡아
"이미 알고 있는 길이다. 하지만 새롭게 재구성, 재해석된 길을 걷는 묘미는 마치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것 같은 그 어떤 쾌감을 전해준다."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의 특별함이 바로 이 재해석과 재구성일 것이다.
지난 18일 올해 네번째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가 진행됐다. 이번 에코투어는 제주시 조천읍과 표선의 경계선 즈음한 남조로변에서 출발해 구두리오름~가문이오름~가시천~쳇망오름~목장길~여문영아리오름~송천~목장길~물영아리오름 둘레길로 이어지는 코스로 진행됐다.
제주 정부종합청사에서 출발한 버스가 투어참가자들을 내려준 곳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렛츠런 파크 제주경주마 육성목장 인근 남조로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딱 경계지점이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감도 잡히지 않고 있는 우리들을 이권성 제주트레킹연구소장이 이끈 곳은 구두리오름으로 이어지는 숲길이었다.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아침부터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뒤로하고 신록이 우거진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이들이 잠시 멈춘 곳에는 산딸기가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곳. 어릴적 산딸기를 따먹었던 추억을 되새기며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산딸기를 맛보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숲길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바로 제주의 전통적인 목축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인 '잣성' 유적이었다.
제주 목축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인 '잣성'
잣성은 목마장 경계에 쌓은 담장을 가리키는데, 해발 150~250m 일대는 하잣성, 해발 450~600m 일대는 상잣성, 그리고 해발 350~400m 일대는 중잣성이 위치하고 있다. 하잣성은 해안지대 농경지와 중산간지대 방목지를 구분하는 경계부근에, 상잣성은 중산간지대 방목지와 산간지대 삼림지대를 구분하는 경계부근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때죽나무와 산딸나무, 모시풀에 이어 지금은 철이 아니라 볼 수 없지만 양하(양애) 등 다양한 식물군에 대한 이 소장의 설명에 탐방객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어느새 구두리오름 정상에 다다랐다. 이 오름은 가시리와 교래리의 경계에 있는 오름으로, 한자어로 구두리(九斗里)로 쓰이며, 모양새가 개의 머리와 비슷해 구두악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보통 구두리오름 가는 길은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입구 맞은편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숲길을 통해 역방향으로 오름을 오른 것이었다. 현재 굼부리는 말굽형으로 돼 있지만, 처음에는 원형이었던 것이 침식되면서 말굽모양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신비로움을 뿜어내는 진평천
곧바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른 곳이 바로 가문이오름이었다.
가문이오름은 분화구 내 울창한 산림지대가 검고 음산한 기운을 띠는 데서 유래됐는데,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상 깊은 화구 안에 솟은 작은 봉우리와 용암이 흘러나가며 만든 말굽형 분화구의 형태를 보인다. 오름 중턱까지 삼나무와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위로는 빽빽한 낙엽수림이 자리잡고 있다.
가시천을 지나 쳇망오름으로 가기까지 일반적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아니라 산세가 약간 험해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초록의 신록에 숨겨져 있던 파스텔톤의 산수국의 물결은 중간중간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오름 숲길을 빠져나와 마주한 드넓은 초지와 그 곳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수십 마리의 소때를 본 순간은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몽롱함'까지 안겨주었다.
점심을 먹는 사이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에코투어의 메인 오름인 여문영아리오름으로 향했다. 남쪽의 물영아리오름과 나란히 서있는데, 물영아리가 정상분화구에 물이 차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그 반대로 분화구가 없기 때문에 '여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여문영아리'라고 불린다고 한다.
박쥐나무꽃
초록의 신록에 숨겨져 있던 파스텔톤의 산수국
산수국을 따라 남녘 능선을 타고 남동쪽으로는 깊게 패여 숲을 이루고 있는 말굽형 굼부리를 갖고 있다. 이보다 더 크게 터진 굼부리는 북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두 개가 중첩돼 있는 것이 여문영아리의 특징이다. 정상에 서면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붉은오름, 가문이오름, 작은사슴이오름, 큰사슴이오름 등을 조망할 수 있는데, 이날은 비날씨와 자욱한 안개로 아쉽지만 장관을 볼 수는 없었다.
이날 투어는 제주시내 날씨와 달리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탓에 걷기에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남사르습지로 더욱 유명해진 물영아리오름의 둘레길을 돌며 일정을 정상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날 함께한 이진수(48·서울시)씨는 "설명이 있는 클래식처럼 트레킹하며 설명도 해주니 아주 좋았다"면서 "특히 평소에는 가지 못하는 숲길과 오름까지 갈 수 있어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또 여행중 지인의 SNS에 올려진 에코투어 내용을 보고 참가신청을 했다는 박수만(54·경기 의왕시)씨는 "평소에 오름과 숲길을 좋아한다"면서 "우연한 기회에 제주의 속살까지 보게됐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돼 주최측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