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김창열의 물방울과 서예술의 변용

[목요담론]김창열의 물방울과 서예술의 변용
  • 입력 : 2016. 09.29(목)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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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지예술인 마을에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김창열은 1957년에 박서보, 정창섭 등과 함께 한국의 급진적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던 화가다. 1972년부터는 물방울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어 '물방울 작가'로 불리고 있다. 90년대 이후는 작품의 배경을 천자문으로 만들어 작가는 물론 평단에서도 '김창열 물방울 작품'의 응결체로 '천자문 시리즈'를 들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강렬하게 동양의 철학과 정신성을 드러내어 새로운 사유의 장을 만들어 준다.

문화적 패권을 자랑하는 서양미술에서 동양의 서예를 차용했던 사실이 있다. 1950년대 서예가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영향을 준 것이 그것이다. 1, 2차의 세계대전 후 물질문명의 비참한 종말과 함께 인간성의 상실로 서구의 정신적 가치가 붕괴되자, 새로운 대안으로 서양은 동양의 정신문화에 의탁하였다. 그런 가운데 동양 미학의 정수인 서예가 현대미술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서예의 영향은 서양미술에서 서체주의를 태동시켰는데, 서체주의 작가로는 마크 토비, 앙드레 마숑, 장 드고텍스 등이 있다.

서예가 서구에 차용되면서 근본적으로 그린다는 것이 달라졌다. 무의식의 흐름을 지칭하는 오토마티즘, 물감 통이나 튜브 채 난사하는 즉흥적 유희적 행위가 사용된 액션페인팅이 그 것이다. 액션페인팅은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서체주의의 미학적 표현 특성은 서예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과 속도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흑색이 주는 신비감, 필획의 주는 생동감과 중량감, 당시 대세였던 무의식에 대한 관심이 만든 초서(草書)의 자동 기술적 심리, 일회성의 즉발적 액션, 수묵의 번짐 현상 등을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표현하였다. 이런 작품들이 지금 유명 미술경매에서 몇 백억이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다니 서예를 정수리에 담고 사는 동양의 서예가들이 갖는 자괴감이 크다.

활자와 컴퓨터의 발달은 의사전달 수단이라는 서예의 1차적 기능을 약화시킨 지가 오래다. 서예가 처한 이런 상황은, 사진술의 발명으로 인해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던 근대회화가 맞닥뜨린 위기상황과 흡사하다. 자신의 죽음을 선언했던 회화는 이후 새롭게 추상과 관념을 도입하여, 현실의 재현이라는 회화의 임무를 사진에게 맡기고, 더욱 발전된 오늘의 현대미술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서예술을 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안으로 서예의 전통적 동력을 더 강화시켜 체질을 개선하고, 밖으로 새로운 시대미감에 맞게 서예를 변화시켜야 한다.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를 잘 쓰고 한글의 궁체를 곱게 쓴다고 해서 험난한 예술의 풍랑을 수월히 헤쳐갈 수는 없다. 서예의 미적 활용 영역을 더 확장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에 유추해 본다면 '시(詩)는 문자적인 면에서 서예이고, 서예가 선율적이어서 음악이며, 회화이며, 조각이며, 건축'인 것이다. 이게 바로 서예의 시대성과 현대성을 구축하는 길이다. 서예가 교양이며 예도라고 해서 수신과 도덕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미의식을 찾는데 소홀히 한다면, 시대에 적응 못한 남산골 샌님처럼 생존을 위협받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예술의 시대적 가치와 평가도 지역과 민족별로 다르고, 서예도 그 안팎에서 보는 눈이 서로 다르다. 시각의 초점은 대중에 있다. 서예를 서예 안에만 갇혀두지 말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 세상 속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예술도 변하고 있다. 이제 서예도 변해야 산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서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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