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주년 기획 좌담] '내 삶을 바꾼 신문'

[창간 29주년 기획 좌담] '내 삶을 바꾼 신문'
"기사 한줄 한줄이 쌓여 삶의 지표와 정보곳간 됐다"
  • 입력 : 2018. 04.22(일) 19: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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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덕후' 4명이 최근 본사에서 만나 좌담을 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신문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보고 듣는 시대. '신문의 위기'라고 불리는 지금도 여전히 종이신문을 사랑하는 이른바 '덕후'들이 있다. 그들은 신문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문의 본질에 접근해 '제주의 대표신문 한라일보'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본사는 창간 29주년을 맞아 '내 삶을 바꾼 신문'을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이들의 스토리는 감동적이었다. 이현숙 행정사회부장의 진행으로 이뤄진 간담회에는 ▷오경수(63) 제주개발공사 사장 ▷고혜영(61) 시인 ▷이진주(41) 걸스로봇 대표 ▷고시연(25)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학생이 함께 했다.

"AI가 쓸수 없는 기사 발굴"

■4명의 참석자가 바라는 '한라일보의 미래'


▷오경수=종이신문의 특성상 '속보성'은 불가능하다. '심층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분석기사가 핵심이다. 사회현상이 집약된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가 있다면 다른 신문과 차별화될 수 있다. 관점이 다양하다는 걸 독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과거를 조명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코너를 만들면 차별화가 된지 않을까 싶다.

▷고혜영='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독자의 시각에서 뉴스를 선택해서 신문을 만들어야 독자가 바라는 신문이 된다. 지금은 언론의 기본 가치를 다시 살펴야 하는 시기이다. 신문이 왜 필요한지, 한라일보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고, 시대변화에 따라 젊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

▷이진주=유치원생 아이는 유튜브만 보고 중학생 아이도 스포츠뉴스만 보고 다른 뉴스를 보지 않는다. 내 아이들을 보면서 늘 고민이다. 고급스러운 정보를 만들어 사람들이 신문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성과 참여성을 가지고 있는 매체를 만들면 모두가 찾는 신문이 되지 않을까. 미래세대와 청년세대를 아우르는 지역 청년과 교육의 플랫폼이 됐으면 한다.

▷고시연=빅데이터가 사회를 진단하고 인공지능(AI) 로봇이 기사를 쓰는 시대가 왔는데, 기사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만으로 신문의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젊은 세대들에게 '신문=딱딱한 것'이란 인식이 있다. '스브스뉴스'처럼 신문뉴스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제주의 청년들의 노력을 조명해주는 것도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오경수 제주개발공사 사장
"나를 CEO로 키운 건 '8할'이 신문읽기"


오경수 사장은 지난해 제주개발공사로 왔지만 직장생활 절반인 17년째 최고경영자(CEO)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주저없이 "나를 키운건 '8할'이 신문읽기"라고 말했다. 그의 신문읽기 방법은 체계적이다. 신문기사가 경영전략네트워크·정보곳간으로 이동되는 것은 8단계로 정리되어 있다.

그의 '신문읽기'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그것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대물림됐다. 일찌감치 정보와 메모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었던 건 농사일지를 빼곡히 기록하고 메모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렇게 오 사장은 30년 넘게 아침마다 꾸준히 신문스크랩을 해오고 있다. 그의 스크랩 노트는 '정보곳간'이란 이름으로 지인에게도 전달된다. 최근에는 SNS를 활용해 확산의 범위를 더욱 넓히고 있다. 오 사장은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대부분 한국음식이 그립기 마련이지만 신문부터 챙긴다"며 "아내는 그 동안 내가 못 읽었던 신문을 가지런히 준비해 놨다 건네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근무 당시에도 '신문 스크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좋은 기사가 나오면 사진으로 찍거나 발표자료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전달한다. 신문기사에 대한 분석과 재가공을 수십년동안 하다보니 신문에 나온 기사를 지식·지혜로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다.

오 사장은 '종이신문을 봐야하는 이유'에 대해 "포털사이트에는 자극적인 뉴스들이 눈에 띄게 구성되어 있고 칼럼·분석기사는 키워드 검색하거나 직접 찾아야 한다. '정보의 편식'을 부추기고 '나에게 필요한 뉴스'는 오히려 숨겨져 있다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고혜영 시조시인
"장애 아들에게 10년간 신문속 詩 읽어줘"


고혜영 시조시인은 농협에서 30여년 근무하고 4년 전 은퇴했다. 지난해에는 '한라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자가 됐다. '신문스크랩'으로 다져진 부지런함으로 그는 올해 첫 시집을 펴냈다.

고 시인의 신문사랑은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성산읍에 살았던 그는 멀리 떨어진 '신문보급소'까지 찾아가 소년지를 구입해 봤다. 바쁜 고교시절을 마치고 '고졸사원'으로 은행에 들어간 그는 직원들과의 대화에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5가지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꾸준한 신문스크랩 덕분인지 사회적인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그러던중 신문속 글귀가 삶으로 들어왔다.

고 시인은 "자녀교육부문 스크랩을 하다가 '태아에서 치매노인까지 읽어주면 좋다'는 표제를 본 이후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에게 책 속 문구와, 신문에 실린 시편을 읽어주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해서 아들은 시를 읊조리게 됐고 중학교 3학년때 첫 시집을 펴냈다"고 회상했다. '지적장애시인'으로 신문에 소개된 아들은 지금도 고 시인과 함께 여행을 통해 시를 쓰고 있다. 그는 이날도 아들의 시집을 소개한 오래전 신문기사가 담긴 액자를 가지고 왔다. 누렇게 색이 바랬지만 "그 어떤 비싼 작품보다 소중한 액자"라고 품에 안았다. 20년동안 스크랩한 기사들을 모은 수첩은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수첩은 '정보의 창고'라고 이름붙여졌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활자중독 부친의 스크랩 세상과 마주한 시간"


이진주 대표는 '활자중독'이자 엔지니어 출신 아버지의 '신문사랑'유산을 물려받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신문키드'였다. 신문에 나온 어려운 한자와 단어를 읽어 내려가는 초등학생을 본 시골학교 선생님은 그의 부모에게 '큰 물에 보내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서울 8학군'로 갔지만 다른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를 돌때 그는 신문과 잡지가 그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그는 "소설, 신문, 잡지를 보면서 자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만한 교육이 없는 것 같다"며 "신문·잡지는 지금도 항상 집에 있다. 내가 그랬든 아이들도 신문·잡지를 보며 자라고 있다"고 얘기했다.

5년 동안 중앙지와 방송사에서 기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로봇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네트워크'를 표방한 '걸스로봇 대표'라는 새로운 인생스토리를 쓰고 있다. 공학자의 꿈을 가졌지만 '여성'이기에 좌절했던 그는 이공계 여성들이 자신처럼 되지 않기위해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신문을 봤던 어린시절이 있었고, 청소년기에 아버지는 신문에서 좋은 칼럼·만평을 스크랩해 책상에 올려두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워킹맘'으로 처음 기자가 된 그는 신문사라는 조직에서 '삶의 방식'을 배웠다. 그는 "신문기자 생활은 NPO(민간 비영리 단체)활동을 하는 지금도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기자로서 핵심적인 능력은 정의감과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시연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학생
"너무 어려웠던 신문… 이젠 언론인 꿈꿔요"


고시연씨는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신문읽기'를 통해 대학에 편입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신문을 사랑하는 학생중 한명이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던 고씨는 "무지함을 벗어나고 싶어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가 신문기자를 꿈꾸는 언론학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2년여동안 꾸준히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기사 내용과 해석, 관점 등에 대해 분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고씨는 "2년이 채 되지 않아 이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희망진로를 바꿀 만큼 신문은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고씨는 친구들이 신문을 펼쳐 보지 않는 것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신문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로 대부분 '굳이' 뉴스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사실은 포털에서 보는 뉴스들도 신문에서 기반한 것인데 대부분 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청년·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플랫폼역할을 신문사가 해준다면 '굳이' 신문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고씨는 "좌담을 통해 들은 의미있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라며 "오랜 시간동안 신문을 사랑하고 읽어온 분들의 이야기를 젊은 친구들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진행=이현숙 행정사회부장, 정리=손정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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