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30년 제주 30년] (16)별방진

[한라일보 30년 제주 30년] (16)별방진
호시탐탐 제주 노린 해적 경계 위한 별방진
  • 입력 : 2018. 08.02(목) 20:00
  • 홍희선 기자 hah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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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복원 전 별방진 모습. 강희만 기자 photo@ihalla.com

병영 혁파·공사로 훼손… 1994년 복원시작

제주시 동쪽에서 세화를 지나 들쭉날쭉한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풍광도 아름답지만 이 지역에 남은 독특한 역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S자 도로를 달리다보면 영어로 하도(Hado)라고 쓰인 큰 입간판이 있는 한개창 포구 맞은편에서 거무스름한 현무암으로 쌓은 별방진을 만날 수 있다.

복원 후 드론으로 촬영한 별방진. 강희만 기자 photo@ihalla.com

별방진은 조선 중종 5년(1510)에 제주목사 장림이 우도에 자주 정박하는 왜선을 경계하기 위해 김녕방호소를 별방으로 옮겨 진성을 축성했다. 별방은 하도의 옛 이름으로 특별한 방어를 의미한다. 대륙진출의 전초기지가 필요했던 왜구는 호시탐탐 제주를 노렸고 해적들의 노략질도 잦았다. 동쪽 끝 고을인 별방에 튼튼한 성곽이 필요했음이 짐작된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별방진은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체계였던 3성 9진의 하나로 둘레 390자(724m)·높이 7자(2m)의 규모를 지녔다. 별방진의 돌계단을 따라 성곽 위에 오르면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3~4m 높이의 성곽이 그대로 전망대가 된다. 별방진 안쪽 마을은 제주 특유의 나지막한 돌담길이 많아 제주다움이 물씬 풍긴다.

기록에 따르면 별방진 동쪽과 서쪽, 남쪽 방향으로 문이 나 있고 문 위에 초루가 있었다. 성은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생겼는데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지형을 이용해 쌓아 전체적으로 남고북저를 이룬다. 별방진성 안에는 진사와 객사, 군기고, 별창 등의 시설이 있고 군 병력이 배치됐다.

별방진성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907년 각 도의 병영·수영·진영 등 병영 혁파로 차츰 성이 파괴됐으며 하도리 포구 공사에 성돌이 쓰이면서 일부가 훼손됐다. 별방진은 제주 성곽 연구의 중요성을 지닌 문화재로 평가받아 1974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됐다. 이후 옛 북제주군은 1994년~2006년 성곽 550m와 치성 1곳을 보수·복원했다. 이어 2010년 성내의 샘물을 복원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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