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조미영의 제주마을탐방] (1)제주시 '광령2리'

[2019조미영의 제주마을탐방] (1)제주시 '광령2리'
도시 편리함과 농촌의 여유 공존… 500년 역사도 간직
  • 입력 : 2019. 07.11(목)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가로운 농촌마을 관광대학 들어서며 변화
시시각각 변화 사이로 정겨운 옛 풍광 남아있어
인구 급증으로 늘어난 민원·소통 단절은 문제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평화로 초입으로 들어서면 풍경은 금세 바뀐다. 하늘도 나무도 바다도 각자의 색을 머금고 있다. 회색빛 콘크리트에 쌓여 사는 도시인들에게 이 같은 자연의 색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에너지로 다가온다.

제주도청에서 서쪽으로 11㎞ 지점 관광대학교를 지나 광령2리 교차로로 진입하면 아담한 마을이 나온다. 나무들 사이로 드문드문 자리 잡은 집들이 적당히 자연과 조화를 이뤄 여유롭다. 서귀포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고 달리는 평화로에서 불과 몇 백 m만 내려오면 이런 한가함이 자리한다. 최근 전원주택지로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풍경

광령2리의 역사는 조선 성종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광령리 남측의 '서당골'과 '산이골'에 살던 유목민들이 이신이굴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하니 약 500년의 역사를 갖는다. 당시 마을은 거악대물을 중심으로 형성됐다고 하는데 지금도 마을회관을 끼고 약 20m쯤 가면 이 물통을 볼 수 있다. 물이 나는 곳 주변에 거욱대가 있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마을 식수를 담당했던 중요한 곳이다. 지금도 식수대와 빨래터 등이 남아있긴 하나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광령리는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로 농가 90%가 감귤농사를 지었다. 이런 한가한 농촌 마을에 변화를 준 것은 마을 초입에 들어선 관광대학교이다. 학교 뒤편으로 원룸과 학생식당 등이 들어서며 조금씩 달라졌다. 최근엔 이주민이 급증하며 마을풍경이 확 바뀌는 중이다. 마을안길에 아담한 펜션이 들어서고 작은 카페들도 생겨났다. 마을 도로변으로 크고 작은 공장이나 창고들이 많은 탓에 설핏 공업단지 느낌도 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과수원을 끼고 도는 고불고불 돌담길의 정겨운 매력은 제주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덕분에 고내포구에서 출발하는 올레16코스가 광령2리 청화마을을 지나 마을 안길을 따라간다.

골목길에 화사하게 핀 수국

특색 있는 마을길은 또 있다. 법장사에서 백제사까지 잇는 길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보시의 길' 중 하나로 인근의 사찰들을 이어 걷는 길이다. 총 14.5㎞의 구간 중 일부가 광령2리를 관통한다.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다보고 싶은 사람은 법장사에 가보길 권한다.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마을전경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다. 큰길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백제사에 다다르면 '깨침터'라는 현판이 인상적인 사찰과 만나게 된다. 학생들을 위한 대안교육을 운영하는 곳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며 사색하기에 좋아 보인다.

곳곳에 전원주택이 들어선 마을전경

광령 2리 마을 운동장엔 사연이 있다. 고 신태순씨가 본인 소유의 땅 2157평을 기증하고 마을 청년회가 시설을 보강하며 완성한 곳이다.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마을체육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향우회 지역입주 업체 등이 참여해 친목을 다지는 마을의 주요 행사이다. 개회식에는 경찰관악대가 참여해 연주를 해준다. 농촌사랑 1사1촌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 덕분이다. 체육대회라지만 윷놀이, 투호, 단체줄넘기 등을 함께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는 자리이다.

마을의 중요한 식수였던 거악대물.

그러나 요즘 마을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급작스런 인구 증가로 변화가 생겼다. 늘어난 주민에 비해 생활용수 관정이 부족해 가뭄이면 단수를 해야 하고 많아진 교통량으로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아졌다. 마을의 민원은 늘어 가는데 소통은 원활치 않아 애로점이 많다. 마을회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주민들 간 교류가 중요한데 쉽지 않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마을 일에 나서서 일을 해야만 한다. 마을길을 포장하고 생활용수 관정과 농업용수 관정을 새로 연결해 물 부족 현상도 해결하고 있다. 이런 일에 팔을 걷고 나서는 것은 이장과 마을 자생단체장들이다. 이 사람들이 있기에 마을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어려운 시기 마을의 기틀 마련을 위해 공동으로 일궜던 일들은 더 많다. 길을 닦고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위의 사례처럼 땅을 기부채납 하는 등 마을자산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점차 이 같은 사실을 잊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무관심은 결국 갈등이 되고 있다. 최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모든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토착 지역민들의 텃새라 생각지 말고 마을이 가꿔지기까지 긴 시간 많은 손길들이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 번쯤 이 땅에 터를 내리고 살았던 이들의 과거를 기억해 준다면 서로 조금씩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신영필 광령2리장

"원주민·이주민 소통 기대"


신영필 광령2리장

3년째 마을 일을 하고 있다. 올해의 역점 사업은 마을회관 옆에 다목적회관을 완공하는 것이다. 기존의 마을회관은 2006년 건립됐으나 규모가 작고 기자재가 낡아 각종 회의 및 영농교육 시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마을회관 옆에 새로 건물을 지어 각종 회의 및 마을프로그램을 위한 시설로 이용할 예정이다.

5~6년 전부터 마을이 급속히 팽창하는 추세다. 평화로와 중산간서로의 확장으로 마을 접근성이 좋고 노형동과 가까워 시내진출이 용이한 것이 이유인 듯하다. 그러다 보니 현재 마을회관 앞 도로의 자동차 통행도 많아졌다. 하귀쪽 거주자들도 평화로 진입 시 대부분 이 길을 이용한다. 작은 마을길이었는데 갑자기 늘어난 차량 통행으로 안전이 걱정된다. 도로 주변으로 인도가 확보되지 않고 보호시설도 없어 사고의 위험이 늘었다. 이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안내판 등의 추가 설치로 길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마을에 유입인구가 늘어나 마을이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으나 기존의 마을주민들과 이주민 간의 소통과 화합에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다. 지금은 마을인구의 비율보다 이주하신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는 추세이다. 전원에서 조용히 지내시길 원하시거나 세컨하우스 개념으로 오신 사람들도 많아 마을 행사에 참여하는 등의 교류가 드물다. 그래도 마을체육대회나 행사에 같이 참여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마을남쪽으로 대규모 공동주택이 들어설 예정인데 각종 인프라 부족으로 걱정되는 바도 많다. 기존 마을주민들과의 논의를 통해 앞으로 야기될 수 있는 교통, 환경 등의 여러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여행작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60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