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둘러싸인 삼형제말젯오름 정상부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상국기자
가을이지만 아직 진녹색 드리운 숲딱따구리·멧돼지 등 발견하는 재미안개 머금은 몽환적 말젯오름 장관
절기상으론 가을이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여름같다. 단풍으로 변장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숲엔 여전히 진녹색이 드리운다. 숲 속에서 아스팔트가 아닌 흙밭을 거닐고 있으면 마음 한켠에 차분함이 자리를 잡는다.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고 있자니 가을이 서서히 물들어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15일 한라일보의 '2021년 제8차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가 진행됐다. 코스는 제주시 안덕면 쓰레기매립장 입구에서 시작해 삼나무숲길, 돌오름길, 버섯농장 삼거리, 조릿대길, 삼형제말젯오름, 색달천을 끼고 돌아 18림반에 도달하는 13.9㎞ 구간이다. 이번 투어 역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해 비대면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해 진행됐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는 가운데, 나무 그늘 아래서 간식을 먹고 난 뒤 몸을 풀고 출발했다. 양 옆 울창한 숲 사이로, 오솔길 같은 비포장도로를 지났다. 풀숲을 한번 헤집어보니 놀랐는지 여치, 방아깨비 등 풀벌레가 뛰어올랐다. 숲 사이로 구름이 지나다니는 장면을 보니 맘이 한껏 편해졌다.
산딸나무
덜꿩나무
울창한 삼나무숲길을 지나 돌오름길로 향했다. 돌오름은 오름 등성이에 돌이 많아서 또는 오름 정상 한바퀴를 돌 수 있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 곳엔 정말로 돌이 많아 발바닥이 아팠다.
조금 더 가니 표고버섯 밭이 나왔다. 표고버섯 내음이 일행을 휘감았다. 버섯 무인판매대도 있어 신기했다.
풀숲을 헤쳐 가니 딱따구리 부부가 집을 찾느라 분주했다. 서로 나무를 번갈아가며 부리로 쪼아대는 모습이 잉꼬 같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는지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이 같은 모습을 보니 청년들이 월급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순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멧돼지
잔나비걸상버섯
이번엔 길 한복판에 어미와 새끼로 추정되는 멧돼지 2마리가 진흙밭에 코를 박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을테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간간히 타 지역에서 멧돼지 무리가 인근 밭을 휩쓸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어 난폭할 줄 알았는데, 순하고 귀여웠다. 조금씩 접근하자 귀찮은 듯이 인근 풀숲으로 천천히 몸을 옮겼다. 후다닥 도망가지 않고 아쉬움에 인근에 머무르는 것을 보니 분명 맘에 드는 장소였거나, 지렁이를 파먹고 있었을 터다. 길잡이 박태석 씨는 "제주의 멧돼지는 대부분 집돼지들이 도망친 후 야생에 적응해 멧돼지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천남성(사진 왼쪽), 송악
단풍나무
삼형제말젯오름 입구에 들어서자 가파른 숲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말젯'은 셋째를 뜻하는 제주 고유어인데, 한라산국립공원 서쪽 끝에 있는 삼형제오름(세오름)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말젯오름의 높이는 1075m로 만만하게 보고 올라갔다간 큰코 다치기 쉽다. 이날 설상가상으로 땅은 질퍽였고, 조릿대가 울창하게 들어서 있어 땅 밑이 잘 보이지 않아 수차례 넘어질 뻔했다. 이와 반대로 숲은 안개를 머금은 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더 빨라지게 했다.
정상에서 휴식한 후 색달천으로 향했다. 내리막길 역시 가팔랐는데, 오르막길은 질퍽이는 땅이 문제였다면, 내려가는 길은 돌부리와 나무 뿌리가 일행을 난감하게 했다. 특히 뿌리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 더 미끄럽게 했다. 저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내려갔을까. 색달천에 도착했다. 하천을 넘어가려 했으나 안전상 위험한 관계로 옆의 조릿대길로 이동해 18림반에 도착하며 에코투어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