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감귤'이라면 으레껏 제주를 떠올릴만큼 제주의 대표적 특산물이지만 몇 십년 후엔 이런 공식이 깨질 수도 있다. 지난 4월 농촌진흥청은 2020년 발표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활용한 감귤 등 6대 과일의 재배지 변동을 전망한 예측지도를 발표했는데, 감귤 재배 가능지가 현재 제주와 남해안에서 2070년엔 강원도 해안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제주지역 감귤 재배면적은 2만38㏊(2020년 기준)로, 전국 재배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륙에선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재배가 시작돼 지금은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등 전역에서 조금씩 재배가 시도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제주를 제외한 내륙지역의 유자를 제외한 감귤류 재배면적은 1026농가, 309.4㏊에 이른다. 2017년 140㏊였던 내륙의 감귤 재배가 5년 새 갑절 넘게 증가한 것으로, 시설재배가 263.6㏊, 노지 45.8㏊다.
■전남 면적 최다로 160㏊에서 한라봉·레드향 등 재배
전남지역의 감귤 재배는 2015년 70.6㏊(만감귤 58.6㏊, 노지 12㏊)에서 올해 161.0㏊로 늘었다. 한라봉이 60.9㏊, 레드향 38.7㏊, 천혜향 9.7㏊, 황금향 6.3㏊ 등으로 주로 나주, 고흥, 장흥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노지재배는 완도 등 일부 해안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기온이 영하 7℃ 이하로 몇시간만 내려가도 나무가 얼어죽는 피해로 면적은 정체 상태다.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서 20년째 한라봉 농사를 짓는 김철동(64)씨. 지난 6월 찾은 그의 6000㎡ 규모의 한라봉 하우스는 올해 착과가 잘 돼 1차 열매솎기를 막 끝냈을 즈음이었다. 그의 한라봉 하우스와 바로 맞닿은 논이 지역의 주요 재배작물을 짐작케 했다. 지금은 주변에 하우스들이 하나 둘 들어섰지만 그가 한라봉 재배를 시작한 2002년만 해도 하우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철동씨의 한라봉 하우스 일대는 논농사가 대부분이다. 문미숙기자
나주에는 51농가가 구성된 나주시한라봉협의회가 꾸려져 있을만큼 한라봉 재배의 역사가 제법 깊다. 회원들은 평균 3300㎡ 규모로 한라봉을 재배중이다. 협의회 총무로 18년동안 활동하다 2년 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한라봉 재배는 나주시가 2002년 포상금으로 묘목 구입비를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묘목을 지원받은 17농가 중 한 명이 그다.
제주에선 1990년대 초반부터 한라봉 재배가 시작됐는데, 나주지역에서의 한라봉 재배는 이영길씨가 1987년 일본에서 국내 최초로 한라봉 묘목을 들여와 시험재배 후 1995년부터 시설재배에 들어가면서 나주와 고흥을 중심으로 재배가 시작됐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 역시 재배 초반 이영길씨로부터 적과, 전정, 방재 요령을 배우면서 다행히 큰 탈 없이 묘목을 심은 지 5년 째부터 본격적인 수확을 할 수 있었다.
한라봉 농사를 짓는 이를 손꼽을 시절, 김씨가 한라봉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벼농사를 짓다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 전환한 멜론과 방울토마토의 연작 피해에 직면하면서다. 또 일손이 너무 많이 들어 힘겹던 차에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간다는 한라봉을 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잘한 선택이었다고 얘기했다.
김철동씨는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서 한라봉 농사를 20년째 짓고 있다. 문미숙기자
재배 초기엔 재배기술을 습득하러 제주도도 여러 번 찾곤 했지만 그만의 소신이 있었다. 해마다 혼자 35일동안 한라봉 전정에 매달린다는 그는 "주변에선 한라봉 나무를 키울 때 원줄기(주간)에서 주지(원가지)를 2개 만들라고 하는데 나는 주지를 3~4개 만들어 조경수처럼 나무를 예쁘게 키운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겨울철 하우스 내부가 5℃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온풍기로 최소가온을 하고, 당을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그의 하우스 바닥에는 멀칭을 깔아놨는데 토양 수분 유지, 지온 조절에 도움을 주고 잡초를 억제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시설채소류에서 작목 전환해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
그는 출하 초기엔 공선회를 통해 지역의 도매시장으로 출하했다는데 직거래 가격에 못미치면서 직거래 비중을 늘렸다. 지금은 30~40%를 직거래하고, 60% 정도는 가락시장으로 출하한다. 제주산 한라봉 틈에서 경쟁할 만큼 자신있다는 얘기다. 광주 소재 백화점으로부터 3㎏ 상자를 제공받아 한라봉을 9개씩 담아 2만1000원에 납품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입소문을 타고 그의 한라봉 하우스엔 재배기술을 배우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다. 주변에서 한라봉 농사를 잘 짓는다는 말을 듣는다는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좋은 한라봉을 만드는 것"이다. 한라봉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나주시 산포면에서 한라봉과 레드향을 재배하는 윤사일(69)씨도 부인과 멜론과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다 품종을 전환한 경우다. 2005년 제주에서 2년생 한라봉 묘목 1000여그루를 매입해 9900㎡에서 한라봉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역시 이영길씨로부터 기술지도를 받기도 했고, 제주도 몇 차례 찾아 정보를 들으며 3년 후부터 수확할 수 있었다.
전남 나주시 산포면에서 한라봉과 레드향 농사를 짓고 있는 윤사일씨. 문미숙기자
한라봉은 설 명절 대목에 맞춰 직거래로 3㎏에 택배비를 빼고 크키별로 2만~3만원에 판매하는데 설 명절 직전엔 구입 차량들이 그의 하우스 앞에 줄잇는다고 했다. 7년 전 5000㎡에서 레드향 재배를 시작한 것도 한라봉 소득이 괜찮았고, 레드향을 찾는 소비자들이 생겨나면서다.
하지만 레드향은 상대적으로 환경에 더 민감한 품종으로 온도와 급수 관리가 만만치 않았고, 열과 발생도 많아 애를 먹었다. 올해는 심각한 해거리까지 발생했다. 윤씨는 "작년 장마 후에 낙과와 열매가 노랗게 되다가 떨어지는 황화현상이 발생해 적과를 하지 않았더니, 그 영향인지 올해 열매가 거의 달리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 재배기술 습득 쉽지 않아 농가별 수확량 차이 커
이처럼 전남지역에서의 감귤 재배는 채소를 시설재배하던 농가에서 새로운 소득작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낮은 시설하우스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묘목은 대부분 제주에서 구입하고, 유통은 대부분 직거래나 로컬푸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농가들이 겪는 큰 어려움은 전문기술 습득이 어렵다 보니 농가별 재배기술에서 차이가 나고 수확량 차이도 크다는 점이다.
내륙지역에서 만감류 재배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제주에 자리한 감귤연구소는 감귤로 작목 전환을 희망하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현장컨설팅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2019년부터 전국 농업기술센터 지도사를 대상으로 '육지부 감귤재배기술 과정'을 운영해오고 있다. 감귤연구소 박석만 농업연구사는 "코로나 상황에선 비대면으로 교육을 진행됐지만 올해 9월에는 대면교육으로 전국의 지도사 3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