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명칭은 북포(北浦)에서 왔다. 제주목에서 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포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으리라.
다려도가 자연 방파제가 역할을 해 마을 전체가 포구 안에 있는 느낌을 주고 있으니 포구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서쪽은 서우봉이 바다로 길게 뻗어나가 마을을 품어주니 더욱 안온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형세다. 세 곳의 천연 포구인 큰성창, 검석개, 해동포구 모두가 바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한 이 마을의 역사다. 단순하게 어선이 정박하는 기능을 뛰어 넘어서 저 포구로 인해 빚어진 이야기들과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소박한 심성을 느끼게 하는 곳.
여기 북포에는 어떤 배들이 역사의 방파제 안에 있는가. 제주도 기념물 제42호 고두기엉덕(바위그늘집)이 신석기시대 선사인들의 주거공간으로 이용됐음을 보여준다. 일시적인 주거지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북촌리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풍부한 식량자원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증거가 된다. 의미하는 바 크다. 최악의 경우에도 굶어 죽을 일이 없는 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근본적 생존 본능에 따라 삶의 터전으로 이어져 내려온 마을. 북포는 또한 환해장성과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댓불, 열여덟 곳의 용천수. 거기에 가장 가슴 아픈 4·3 비통의 성이라고 하는 성담과 500명이 무차별 집단 학살당한 너븐숭이를 품고 있는 마을. 방파제 다려도가 품고 있는 마을에 일어난 이 세계사적인 사악함. 국가가 저지를 수 있는 악마적 만행이 어떤 경우인지 보여주는 현장이 '북촌에 있다.' 그날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사가 북촌리의 오늘이다. 윤성식 이장에게 여쭸다, 북촌리의 가장 큰 자긍심이 무엇이냐고. 한마디로 응축해 '좌절은 없다.'라고 했다. 너븐숭이 집단학살 이후 남편을 잃은 어머니들이 심정은 필설로 표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며 닥친 현실은 막막했다.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이웃에 사람의 도리를 다해 살아야 하는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다. 150여 분의 어머니들이 홀로 세상풍파를 이겨내며 자녀를 키우고 마을공동체를 지켜낸 세월. 닥친 비극을 극복하는 불굴의 여성상을 마을공동체라는 울타리 속에서 실현한 그 정신이야 말로 후세의 귀감이기에 윤성식 이장의 주장은 그 분들 모두를 웅장한 돌조형물에 새겨서 열녀비 이상의 예의를 올리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북촌리의 오늘이 있다는 것을 손자 손녀들이 뼈 속 깊이 인식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좌절을 한다는 것은 그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좌절금지구역 북촌리의 표상으로 자리매김되기를 염원하면서.
다려도는 경관적 가치 이상이다. 큰성창포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7400여 평의 바다 위에 솟은 공간.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여(礖:돌 여)로 이뤄져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족자원들이 몰려드는 자연어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필자가 북촌마을에서 만든 자료를 살피다가 '특산물'이라고 적혀진 내용을 보니 이러했다. 소라, 전복, 해삼, 성게, 오분자기, 돌문어, 군소, 미역, 톳, 모자반, 우뭇가사리, 참파래, 청각, 감태, 지충, 둠북, 북바리, 다금바리, 방어, 부시리, 히라스, 볼락, 우럭, 황돔, 구문쟁이, 논쟁이, 자리돔, 갓돔, 혹돔, 가오리, 오징어, 갈치, 상어, 빅개. 이렇게 그대로 모두 적은 이유가 있다. 제주바다자원 모두가 들어있는 곳. 다려도 자체가 생태계의 보고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의 자체적인 표기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환경적 요인과 결합한다면 엄청난 경쟁력이 발생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필자에게 해안마을 중에서 제주 한달살이 마을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와서 1순위로 북촌리를 추천한 기억이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섬 제주 바닷가 마을의 특징이 총망라 된 마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사시사철 풍겨나는 느낌이 다르고, 하루 중에도 아침에서 저녁, 심지어 야경에까지 북촌리가 제공하는 경관적 섬세한 변화는 다양하다. 자연자원과 역사자원이 이토록 풍부하게 넘실거리는 곳은 드물다. 북촌리가 보유한 짙은 향기는 스쳐지나가며 마실 수 있는 품격이 아니다. 명품마을이라서.
<시각예술가>
도와치골목 청록의 만남<수채화 79cm×35cm>
새로운 방식의 집들이 크게 지어지는 추세지만 그래도 옛 모습을 간직한 정겨운 풍경들이 있다. 두 세대 전에는 대부분 초가집이었을 정주공간에서 집이 위치와 입구방향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민간 신앙에 가까운 풍속.
그러한 경우의 수들 사이에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집과 집 사이를 이어주는 골목길이 있었다. 취락구조가 많은 부분 보존된 북촌리에서 포구와 함께 있는 용천수 도와치물과 남쪽으로 잇닿은 골목을 그렸다. 왼쪽 지붕은 청색이요 오른쪽은 8월의 초록나무다. 두 만남이 여름을 상징하는 것 같아. 지붕 위로 넘어온 햇살이 돌담과 나뭇잎에 반사되는 공간감이 인상적이기도 하여. 이 골목의 명칭을 90세 정도 어르신들은 '그늘질'이라고 불렀다. 연유는 상세히 알지 못하나 그늘진 길이라는 뜻에는 사연이 있을 법도 하거니와 저 그늘 속을 도와치물에서 물허벅에 물을 길어 등에 지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들을 떠올린다. 살아간다는 것. 그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살아왔기에 그 살아온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삶을 묵묵하게 지고 가시던 그 길. 센 바람이 돌풍처럼 골목 사이를 휘졌고 지나간다. 나뭇가지들이 휘청거린다. 나뭇잎은 무서워서 떨고 있고. 하지만 돌담에 따스한 저 햇살은 그대로다. 광풍이 아무리 거세도 햇살을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저 따사로움이 상징하는 모정을 그리려 하였다. 4·3광풍에 남편을 잃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장한 어머니들의 모정을 저 햇살에 담아서 드리고 싶다.
다려도의 평화로운 아침<수채화 79cm×35cm>
눈부신 아침이다. 수평선 하늘 위엔 아직 하늘색이 칠해지기 전이기에 오직 빛 색깔로 가득하다.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는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섬이라는 세상이 있다. 다려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시각에 섬은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뜬 기분이다. 그 위에 지어진 '북포정'이 존재감을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 은은하면서도 품격있게. 검은 바위들도 그냥 검은 것이 아니라 빛을 맞이하는 곳과 아닌 곳으로 나뉘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굴곡진 섬의 식물지대는 아침을 표현하는 빛의 방식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지금은 썰물이라 물에 잠기는 부분과 그러지 못하는 곳이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다려도. 흙이 그리 많지 않을 저 곳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섬을 덮고 있는 초록색들에게서 야릇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밤에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고 포구로 돌아오는 통통배가 가는 물결을 생성시키며 지나간다. 이미 방파제 안에 들어와 있다. 다려도라는 거대한 방파제가 밖에 파도 너울들을 막아내어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을 만들었으니 포구 속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고요한 생명력이 수평적 흐름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과장된 그 어떠한 것도 오랜 감동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거니와 저 낮은 자세를 평생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겸손이 피 속에 함께 흐를 것이다. 높낮이가 많은 경이로움보다도 순탄함을 미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과 이 풍경이 무엇이 다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