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1)제주시 봉개동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1)제주시 봉개동
오름으로 빚어진 자연의 보고, 번영의 터전
  • 입력 : 2025. 01.31(금) 03:3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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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번영로가 번영시키는 마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길이 얼마나 중요한 지역발전의 디딤돌이 되는 것인지 봉개동의 옛 모습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제주시 중심지역의 동남쪽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면서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와 자연의 가치와 함께 하는 곳. 명도암에서 용강마을, 동회천과 서회천까지 아우르는 봉개동. 예전에는 중산간 명도암 마을목장 영역을 따로 가지고 독자적인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마을들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크고 작은 오름들이 바둑의 묘수를 연상시키듯 절묘한 위치에 솟아나 있다. 작은 오름들을 빼고 널리 알려진 오름만 하더라도 10개를 꼽을 수 있다. 봉아오름, 칡오름, 안새미오름, 밧새미오름, 족은노리손이오름, 큰노리손이오름, 거친오름, 민오름, 절물오름(큰대나오름), 족은대나오름. 이러한 오름자원을 바탕으로 오름축제까지 열리고 있다. 오름이 솟아 있다는 자연적 의미 못지않게 오름과 오름 사이에 펼쳐진 독특한 공간감이 주는 힐링요소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 솟아난 오름이라는 존재가 발생시키는 높고 낮은 구릉들과 오묘한 지형적 매력이 식생자원의 풍요를 낳게 되는 천혜의 땅이다. 특이한 점은 다섯 개의 자연 마을이 합쳐진 너른 영역에 큰 냇가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솟아나는 샘물들이 많아서 조상 대대로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영섭 주민자치위원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을 종합하면, 약 1500년경에 이미 명도암, 새미, 가는새, 봉아름, 웃무드내 등 5개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봉아름 및 명도암을 봉개리로, 새미와 가는새를 회천리로, 웃무드네를 용강리로 개칭하게 됐다. 4·3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함께 마을들이 모두 타버려서 그 이전에 살았던 주거지역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특히 명도암 지역은 규모가 큰 마을이었음에도 모두 타버려서 아랫마을 봉개로 이주해 살고 있는 가구가 많다고 한다. 그 아픈 역사의 장소에 '제주4·3평화공원'이 건립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도로 여건과 자연자원이 만나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대표적인 사례답게 관광휴양 관련 시설들이 많다. 그만큼 시장원리에 입각한 투자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절물휴양림을 필두로 노루생태관찰공원, 한라생태숲, 안새미 둘레길과 등산로, 새미숲, 어린이교통공원, 명도암참살이체험 휴양마을, 봉개동 여가문화센터 등 민간사업자들의 공간까지 합치면 참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돼있다. 천연기념물 물장오리오름 산정분화구 호수가 보유하고 있는 전설은 신화적 상상력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섬 제주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이 물이 너무 깊어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부정한 사람이 이 오름에 오르면 갑자기 운무가 낀다는 속설이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자연마을 단위마다 전통적으로 토속신앙 장소들 또한 풍부하게 남아 있다. 그 성소들마다 사연들이 있어 귀중한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부족함이 없다.

고영섭 주민자치위원장에게 봉개동이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무게 있게 응축해 대답했다.

"역세권 기능입니다." 제주시 중심권에서 남동쪽으로 드나드는 인적 물적 흐름이 봉개동이라고 하는 곳에서 증폭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는 것. 애조로까지 연결 지어 생각하면 사통팔달의 요충지이기에 교통여건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룩될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했다. 과거에 비해 외형적 발전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봉개동이 보유하고 있는 잠재력은 실로 엄청나다. 다섯 개의 자연마을들은 역사적으로 독자적인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었기에 행정적으로 하나의 구심체를 형성해 발전의 주체이며 혜택을 누리는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더욱 굳건하게 융합하고 규모의 경제가 보여주는 비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조상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주장이 현실이다. 삶의 터전, 그 위치를 너무 잘 잡은 혜택을 후손들이 넉넉하게 누리고 있으니 그러하다. <시각예술가>

용강마을 아침 길가에서
<연필소묘 79cm×35cm>

집담과 길이 만나면서 흐름을 형성하는 풍경은 너무도 많은 정겨움을 선물한다. 길이 휘면 휘어진 그대로 쌓고, 오르막을 만나거나 내리막을 만나도 있는 그대로 읽어내리며 쌓아가니 오묘한 구부러짐이 독특한 공간미를 확보하는 것. 봉개동 다섯 개 마을 그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그림 소재 중에 중산간마을이었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며칠을 찾아다닌 끝에 만난 너무도 소박한 아침광선의 향연을 채색을 배제하고 명도대비에 의한 햇살의 눈부심을 표현했다. 화면 안에 등장하는 어떤 사물도 전체가 드러난 것은 없다. 심지어 그림자마저도 한 귀퉁이씩 등장하지만 미세하게 S자를 그리며 완만한 오르막을 보여주는 길옆에서 주변 상황을 설명하는 다양한 콘텐츠들에 의해 제주의 농촌 마을 안길이 주는 정감을 나타낼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를 그리려고 복잡한 공간 얼개들의 짜임을 그려내려 한 것은 선조들의 놀라운 토목감각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동산을 오르는 것 같은 경사지역에 집을 짓고 동네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폭우라고 하는 자연적인 침공에 가옥이 침수되지 않아야 한다. 여름철 장마나 태풍에 엄청난 강우가 쏟아지면 그 물은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일시에 흘러들어 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 현대적 우수관 시설도 없던 시절에 절묘하게 집의 방향과 길의 흐름과 같은 것으로 경사진 상황이 발생시킬 물난리를 극복해 낸 노하우가 놀랍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터득한 경험적 지혜들이 이런 정주시스템을 가능하게 했기에.



백록담과 소나무
<수채화 79cm×35cm>

봉개동에서 번영로 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해 애조로를 타고 오르막길을 오른 후에 평지가 되는 지점에서 만나는 정겨운 모습. 필자가 평소에 이 풍경을 좋아해 한지에도 그렸던 경험이 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독백처럼 '백록담에 가장 빨리 오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풍경을 평면화시키는 패러독스를 가미하면 딱 한 그루 하늘 향해 급하게 솟아난 소나무는 한라산 능선 중에 백록담과 걸쳐지게 되면서 사다리가 된다. 나무를 타고 3m 정도만 올라가면 바로 백록담이니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가. 오름만 해도 엄청난 수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니 풍경화의 소재가 쌓여 있는 곳에서 유독 이 풍경을 선발해 그리게 된 것은 평범한 소나무 한 그루와 한라산이 일대일 함수관계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덕과도 같은 곳에 작은 길이 나있고 주변은 한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들이 짙은 갈색으로 덮여 있는데 마치 사람의 척추처럼 만곡을 이루며 꼿꼿하게 독야청청 서 있는 젊은 소나무. 나이테 기준으로 청소년에 가깝다. 필자는 저 소나무의 광팬이다. 지나갈 때마다 이 질문을 던진다. '홀로 외롭지 않냐'고. 그럴 때마다 자문자답처럼 들려오는 대답이 있다. '아뇨! 큰길 옆이라 하루 종일 지나다니는 차들 구경하고 멀리 한라산을 동경하며 보내니 늘 즐거운 시간입니다.' 나이테가 100개 정도 동심원을 그릴 때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만남을 기억에 남기고자 그린 것이다. 봉개동이 보유한 소중한 스토리텔링 자원이란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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