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주愛 빠지다] (20)정지란 작가

[2022 제주愛 빠지다] (20)정지란 작가
"다시 제주살이… 숨통이 트이는 기분"
  • 입력 : 2022. 10.19(수)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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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란 작가가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는 공원에서 그림을 맡았던 첫 동화책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진선희기자

[한라일보] 그의 제주살이는 2019년 9월 무렵부터 다시 시작됐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며 답사차 처음 제주에 왔던 일, 요즘식의 '한 달 살기'처럼 잠깐 머물렀던 일을 제외하면 그가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 짐을 푼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3년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제주로 거처를 옮긴 뒤 10여 차례 이사를 하는 등 곡절이 많은 나날을 버티다 2018년 이곳을 떠났지만 1년쯤 뒤 귀향하듯 제주로 돌아왔다.

새로운 삶의 돌파구 찾으려 제주서 한동안 정착
4년 전 이곳 떠났지만 1년 뒤 귀향하듯 제주로
그림 배우게 된 제주… 아름다운 동화 남기고파

일러스트 작업 등을 하는 정지란 작가. 그동안 제주에서의 날들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으나 제주는 많은 걸 그에게 안겼다. 제주는 잊고 지냈던 꿈을 일깨웠다. 슬픔을 딛고 일어설 힘을 줬다. 제주의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과 이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그랬다.

정 작가는 그간의 사정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과거 제주에 터를 잡으려 당도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난파선을 타고 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런 마음이 그에게 붓을 잡도록 이끌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제 모습을 보니 애만 쓰고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동화 일러스트를 배우게 됐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가족의 반대로 미술대학 진학을 접어야 했다. 그런 아쉬움을 잊게 만드는 기회가 제주에 있었다. 살던 곳과 가까운 제주시 연동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 개설된 일러스트 강의를 수강했고 이를 계기로 온라인 강의 등 독학을 하며 창작을 이어갔다.

그의 첫 작업은 세라믹 전문가를 다룬 직업 동화의 일러스트였다. 서귀포시 작가의 산책길 그림 지도도 제작했다. 그림책과 동화책의 삽화는 물론 청소년소설 표지 그림 작업을 맡아온 정 작가는 개인 창작물을 전시장에 풀어내는 여정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와 서울 등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모두 다섯 차례다.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는 수강생이 아닌 작가가 되어 '여신본색'이란 이름으로 '제주신화 일러스트 6인전'을 가졌다. 다음 달에는 한라도서관에서 열리는 '마주보기 동화그림회' 단체전에 참여한다.

이처럼 아크릴, 수채물감, 색연필 등을 재료로 그린 따스한 작품들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그이지만 때때로 현실이라는 벽과 마주해야 했다. 생계를 꾸리려면 그림만 붙들고 있을 수 없었지만 중년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직업군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개인적 아픔을 겪으며 몇 해 전 제주를 뜨던 순간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 했다. 제주에 빠진 다른 이들처럼 그 역시 이 섬은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닌 엄연한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일으켜 세워줄 곳은 제주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때 제주 동쪽 어촌 마을에 살던 그는 구불구불 골목길을 빠져나와 마주하는 바다에서 가슴이 환하게 뚫리는 기분을 맛봤다. 3년 전 또다시 제주 땅에 섰을 때 두 팔 벌리고 들이마셨던 억새 들판의 공기에서 또 한 번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고 겉치레보단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해녀들의 문화, 가족 간 독립된 공간을 보장하는 전통 주거 형태인 안거리와 밖거리 등에서는 제주 사람들의 지혜를 읽었다.

"난파선에서 구조된 느낌"이라는 말로 근황을 요약한 정 작가는 앞으로 제주 신화, 풍자, 위로의 눈물 등 세 가지 주제를 각각 그림에 풀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림만이 아니라 글을 직접 써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책' 3권을 내놓고 싶은 바람도 있다. 애써 '행복한 생'을 강조하진 않았지만 "제주에 살아 다행"이라는 그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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