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씨는 더 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몸짓을 전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길우 씨 제공
[한라일보]나이 60이 넘으면 '여분의 삶'이라 생각했다. 욕심 없이 살아야겠다 싶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기자'로 살다 정년퇴직하고 내려온 곳이 제주였다. 아무런 연이 없었지만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듯 이어졌다. 올해로 제주에서 네 번째 여름을 보냈다는 이길우(65) 씨다.
|한 사람을 바꾼 '운동'
이력이 독특하다. 글을 썼고, 또 몸을 썼다. 한겨레신문에서 초대 베이징특파원 등을 지내며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살았던 그는 '무도인'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 무술인 기천문, 혈기도를 비롯해 중국 기공체조인 팔단금까지 섭렵하듯 익혔다. 현재는 대한팔단금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기자 시절 전국을 다니며 '무술 고수'를 취재한 게 배움의 시작이 됐다. 산속에서 보름간 머물기도 하고 주말과 휴가를 바치기도 했다. "몸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생각이 됐다. 몸집이 큰 데다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그를 바꾼 게 '운동'이었다. 살은 빠지고 자신감은 올라갔다. 그는 "만약 운동을 안 했으면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며 "운동이라는 게, 몸이라는 게 정신을 좌우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무술'이라 해 모두 배우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10년 전에 팔단금(八段錦)을 굳이 배운 것도 이런 틀을 깬다는 데 있다. '8단계의 비단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작'이라는 이름 뜻처럼 동작이 단순해 따라 하기 쉬웠다. 그가 꼽는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의 세 조건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른바 "단순, 반복, 지속"이다.
"동작이 너무 복잡하면 순서를 외우다 지치게 됩니다. 나이가 있는 분들에겐 조금이라도 쉽고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어야 되겠다 싶었지요. 주변에 선생이 있어야 한다든지 도구나 음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평 공간만 있으면 혼자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럼 젊을 때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하게 운동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수련을 하고 있는 이길우 씨.
|운동을 나누다
혼자 익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수련한 운동을 추려 몸의 움직임이 필요한 노인과 노숙자, 종교인, 직장 동료에게 배워줬다. "건강은 역시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그는 제주에서도 운동을 나누고 있다. 제주시평생학습관 등에서 운동을 가르치고 도내 대안학교인 볍씨학교 학생들의 '운동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제주시 조천읍에는 '기찬몸 힐링센터'를 뒀다. 마을 주민들의 수련 장소로 쓰이기도 했던 이곳에선 1년에 세 번 캠프가 열린다. 제주에 와서 3~4일간 먹고 자면서 집중적으로 운동하는 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제주이기에 더 조건이 좋았다.
"제주는 좋은 공기,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에요. 복잡한 도시보다 자연 환경이 훨씬 더 좋지요. 물론 습기도 있고 바람도 많지만 100% 완벽한 데는 없죠. 제주에 와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만 쉬어도 힐링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만의 특별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퍼즐에 그간 익힌 여러 무술의 조각 끼워 맞추듯 "제주에 맞는 운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만든 기공 초식인 '조천의 파란 새벽', '함덕의 하얀 구름'이다. 기공 초식을 쉽고 재밌고 유용하게 전파하고 싶다는 뜻이 담겼다. 초식은 태권도로 치면 태극 1장처럼 공격이나 방어를 하는 기본 기술을 연결한 동작을 말한다.
"인체의 몸은 기계랑 똑같아서 안 쓰면 망가져요. 그런데 기계는 윤활유를 치면 (작동이) 부드러워지죠. 인간이 쓰는 윤활유는 바로 '운동'이에요. 예를 들어 (운동을 하면) 굳었던 척추도 부드럽게 되죠. '기분'이란 단어가 기운 기(氣)자에 나눌 분(分)이잖아요. '기분이 좋다'는 것은 내 몸의 에너지가 막힘이 없다는 거죠. 운동을 하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이는 그가 운동을 나누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면 더 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몸짓을 전수해 주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노인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제주에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믿음이 있다.
"제주에는 굉장히 건강한 노인들이 많더라고요. 그렇지만 건강은 역시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만큼 모든 분들이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많이 배운 것보다 건강한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는 훨씬 행복해요. (아프고 나서야) 재활에 애쓰지만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죠. 조금이라고 건강했을 때 건강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해요."
|불안했던 제주 정착, 바람은
처음 제주에 와서 1년 반 동안은 불안했다. "우주에서 유영하듯 발바닥이 땅에 안 닿는 듯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자연 환경에 언어, 문화에서까지 느껴지는 다름이 제주 안에서 어떻게 융화할지를 고민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발바닥에 느낌이 오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그이지만, 자신과 같은 시기를 보낼 이주민을 붙잡을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주민들에게) '네가 노력해서 (제주사람과) 친해지면 되지 않나'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제주에 이주했어도) 결국엔 육지에서 온 사람들과만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많단 말이죠. 해외에서 이주했든 육지에서 왔든 제주에서 이곳의 이야기, 역사 등을 알고 제주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살아보니 그런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고민이 좀 더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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