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늘 치러진다. 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은 큰 해방감을 느낄 듯하다. 인생에서 큰 산 하나를 넘었다. 차분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그동안 못 해 본 것도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교과서'가 중심인 시간을 살아왔다. 학교 또는 학원 일정대로 그대로 열심히 따라가고 주어진 목표나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무난하게 살 수 있는 삶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같은 커리큘럼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 진짜 '자기 삶'을 자기 나름대로 구상하고 구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보다 평생 내가 해도 괜찮은 일, 지겹지 않고 나와 잘 맞는 일, 나아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무엇이 나다운 삶인지, 어떤 일을 하는 게 내가 행복한지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을 마치고 나서도,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례가 꽤 많다. '의존하는 삶'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습관이 되어선 안 된다.
다음으로 '세상 보는 눈'을 얘기 안 할 수가 없다. 요즘은 다들 잘 배워서 아이들마저 제법 '논리'를 따진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공감'과 '배려' 능력이다. 학교에서 머리 쓰는 연습은 충분히 된 편이라 요즘 청소년들은 합리적인 사고에 나름 익숙한 편이지만,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보니 정서적 공감과 배려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철학'은 입시 환경에서 무시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몫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각자 자기 삶을 본격적으로 살기에 앞서 기본 방향을 잡는 '인생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삶'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 '가치' 등의 근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철학 에세이>, <세계사 편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정의란 무엇인가>, <마음의 법칙> 등 철학과 역사, 심리학 등의 교양 도서를 전공에 상관없이 편하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자기 시각'을 고정화 습관화하기 전에, 세상을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양하게 바라보고 '나 아닌 대상'과도 공감하고 배려하며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4·3'을 머리로 논리적으로만 이해하기보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공감할 줄 안다면, 이런 게 '세상 보는 눈'을 키우는 역량이 될 수 있다.
요컨대 '후회 없는 삶' '행복한 삶'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추구하길 바란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평판을 떠나, 스스로 자기 삶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자신을 너무 좁게 한정 짓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맘껏 치열하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살아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한 삶'은 어쩌면 이런 데 있지 않을까? <김용성 시인·번역가·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