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④ 그림 그리는 강희선 할머니
그림 선생과의 만남으로 '그림 공부' 시작
그동안 그린 작품 모아 '소막미술관' 열어
삶이 묻어난 그림·글… "해방감 전파되길"
입력 : 2022. 11.24(목) 16:19 수정 : 2023. 10. 31(화) 13:58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한라일보] "자식들은 모르지. 어머니 아버지가 못 견디게 산 거." 지금도 옛일을 떠오르면 먹먹해 진다. "살려고 하니까" 뭐든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스물두 살 나이에 제주 산간 부락인 조천읍 선흘로 시집을 온 이야기를 하던 강희선(86) 할머니는 "풍파를 만났다"고 했다.
세월도 모졌다. "와 보니 시국(제주4·3)에 몬딱 잃어버리고." 강 할머니가 시집을 왔을 때 남편의 두 형과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남의 소를 빌려 키우고 언니에게 빚져 농사지을 밭을 구했다. 무와 보리, 깨, 유채까지. 안 해 본 게 없다. 그렇게 다섯 남매를 키웠다. 7~8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할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도 "너무 고생했다"였다.
"못 견디면 지쳔 시였주(쉬었지)." 강 할머니가 올해 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림은 그 세월을 지나온 마음을 끄집어냈다. 그림이 글이 되고, 그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이 돼 관람객을 맞는다. 강 할머니 집 한편의 '소막미술관'에서다. 어려운 시절, 소를 키우던 공간이 그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올해로 86세인 강희선 할머니가 제주시 조천읍 선흘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지은기자
그림 선생 최소연 씨와 강희선 할머니가 강 할머니의 작품이 전시된 '소막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젠 그림을 배워주는 선생님을 넘어 엄마와 딸 같은 사이다.
| 인연으로 시작된 '그림공부'… 붓과 연필을 잡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살아 내기 바쁜 세월, 연필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어떻게 우리가 인연이 되려 하니까 선생님을 만났다"고 강 할머니가 말했다. 선흘리 아홉 할머니들이 "그림 선생"이라고 부르는 최소연(55) 씨와의 만남이다. 할머니들이 사는 곳으로 이주해 온 소연 씨는 현대미술을 전공해 서울 등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작가다.
이사를 와서 동네를 산책하던 소연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들의 집이었다. 안채와 바깥채, 그리고 작은 마당의 풍경이 예뻐 보였다. 그가 가르치던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들의 집을 "릴레이"로 다니기 시작했다. 첫 장소는 강 할머니의 '절친'인 홍태옥(86) 할머니 집.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홍 할머니가 호기심을 보였다.
"삼촌네 집을 들리면서 그림 재료를 남겨 놓았어요. 그러니 '나도 한 번 그려볼까' 하시더라고요. 목탄이라는 재료에 호기심을 갖으시길래 "나뭇가지를 태운 게 목탄이에요. 원시 동굴에서도 숯으로 그림을 그렸어요"라고 말씀드리니 신기해하시면서 창고를 그리기 시작하셨죠."
다음 장소가 강 할머니의 집이었다. 소연 씨가 이끈 아이들과 홍 할머니가 함께 그림을 그렸다. 그 모습에 강 할머니도 종이를 잡았다. 소연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버스킹(길거리 공연)을 하는 것처럼 희선 삼촌네 집 마당이 할머니 두 분과 청소년 열두어 명의 그림 무대가 됐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집에서 집으로 '무대'가 옮겨졌다. "우리도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할머니들이 먼저 그림 선생에게 말했다. 올 3월부터 '그림 야학'이 시작됐고, 5월부턴 제주문화예술재단 지원을 받아 '할머니의 예술창고'라는 정식 그림 수업이 시작됐다.
'소막미술관'에 걸려 있는 강 할머니의 작품.
강희선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방에 붙은 작품들. 할머니는 요즘 심심해도, 잠이 안 와도 그림을 그린다.
| "그림 욕심 있는 똑똑한 학생"… 그림은 '삶의 기록'
강 할머니의 첫 그림인 '도토리'도 야학으로 탄생했다. 강 할머니는 그림 한쪽에 '도토리 여섯 개 그려 보니 재밌다'고 적었다. "할 줄을 모르다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걸 이렇게 그려보니까 즐거웠어. 아이고, 이거 조금 그려지겠다 (생각했지)." 강 할머니가 웃었다.
강 할머니가 "그림공부"라고 하듯 할머니는 정말 열심히 그림을 배우고 있다. 그림 선생이나 친구의 그림을 따라하기도 하고, 같은 소재의 그림을 반복해서 더 마음에 들도록 다듬는다. 그런 할머니를 소연 씨는 "그림 욕심이 있는 똑똑한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희선 삼촌이 처음에 소를 그릴 땐 발이 네 개 정도였어요. 그런데 축사에 가서 소를 자세히 관찰하고 이중섭미술관에 가서 큰 황소 그림도 봤거든요. 그러니 할머니만의 시선으로 형태를 이해하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출해 내더라고요."
강 할머니의 그림에는 삶이 묻어난다. 시집 와 고생하던 시절 심었던 무부터 가장 아끼는 반려견 등이 모두 그림 소재다. 첫 작품이었던 도토리 그림도 그의 삶의 일부였다. 도토리가 잘 익어 떨어지는 요즘 같은 계절에 "구르마 가득 채울 때까지 하루 종일 다람쥐처럼 도토리를 줍고, 그걸 씻어 말리고 찌고 갈아 가루를 내 묵을 쑤는" 할머니에겐 특별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오래 안 쓰니 잊어버렸다는 글도 그림을 그리며 다시 깨우쳤다. 강 할머니가 자신의 그림 옆에 일기처럼 남기는 글에선 80년이 넘는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할머니의 대표작이라는 무 그림에는 '2022.6.26'이라는 날짜와 함께 이런 글이 적혔다. "땅에서 나온 거로 삽니다. 한 인생을 그거로 사는 거주. 그런데 그림을 그려보니 팔십육세까지 생각도 못한 일이 생겼주. 나 강희선이 무수 그림을 그려주."
강 할머니의 대표작인 무 그림. '땅에서 나온 거로 삽니다. 한 인생을 그거로 사는 거주'라는 글이 마치 한 편의 시 같다.
|선흘 할망 9명의 그림 전시회 '할망해방일지'
강 할머니의 말처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제 손으로 그린 그림이 온전히 제 것 같지 않다. 그만큼 신기해서다. "어제도 보면서 '이걸 그릴 때 누가 도와줬나' 했다. 그림 선생도 안 그려 줬는데 돌아가신 남편이 그려 줘신가, 죽은 아들이 도와줘신가. 신기해 보여."
강 할머니를 합해 '그림공부'를 하는 선흘 할머니는 모두 아홉명.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그림에 미친 할망"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처음 그림을 배울 때만 해도 행여나 동네사람들이 안 좋게 볼까, 소문이 날까 조심했지만 집집마다 '그림 그리는 방'이 생겼을 정도다. 할머니들은 그곳에서 심심할 때도, 잠이 안 올 때도 붓을 든다.
강 할머니는 "그림을 배우니까 마음이 너무 기쁘더라. 절로 '아 이제 해방이 됐구나'하는 말이 나왔다"며 "정신이 괜찮을 때까지는 아무 거나 그려 볼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선 할머니가 '소막미술관'에 붙은 홍태옥 할머니 사진이 담긴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두 할머니는 동갑 내기로 마을에서 아주 가까운 친구다.
그림 그리는 선흘 할머니 중에 한 명인 김인자 할머니의 작품이 소막미술관에 함께 전시되고 있다. 집주인인 강희선 할머니는 홍태옥, 김인자 할머니를 초대해 소막미술관에서 3인전을 열고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해방'이라는 말은 선흘 할머니 9명이 열고 있는 전시회 이름이기도 하다. 바로 '할망해방일지'. 강 할머니의 '소막미술관'처럼 할머니들의 집과 마당, 창고 등에 미술관 간판이 걸렸다. 강 할머니는 자신의 집인 '소막미술관'에 홍태옥, 김인자 할머니를 초대해 3인전을 열고 있다. 지난 5일 개막한 전시회는 11월 한 달간 매주 토요일마다 문을 열어 관람객을 맞았다. 26일은 전시회 마지막날이다.
"처음 전시회 이름은 그림야학, 그림일지 정도였어요. 근데 그 차원을 넘어, 예술이고 문화인 줄만 알았던 그림이 한 인간의 해방을 만들어준 도구가 된 거죠. 할머니가 해방감을 느꼈다면 그 그림을 보는 우리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 해방감이 전파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림 선생 소연 씨가 초대장을 띄우듯 건넨 말이다.
강희선 할머니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마음이 해방됐다고 말한다. 소막미술관 입구에 전시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