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오리오름의 '장'은노루 장(獐)에 기원
[한라일보] '물장오리오름'에서 이제 오름은 이렇게 해결됐다. '물장오리오름'은 일단 '물장+오리+오름'이니 '물장+산+산'이다.
여기서 '물장'은 또 뭔가? 이 말은 다시 '물+장'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이란 이 산 화구가 물을 가득 담아 호수를 만들었으니 바로 이 '물'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장올악의 '장'은 무슨 뜻이기에 여기에 붙게 된 것일까? 이제 '장'을 해결하면 '물장오리오름'의 의미는 풀리게 되는 것이다.
'장'이라는 말은 순우리말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한자의 장(長)은 길 장, 어른 장이라고 한다. 대체로 '길다'는 의미로 쓰일 때가 많지만 맏아들이라고 할 때의 '맏', '우두머리'의 뜻으로도 흔히 쓰인다. 그중 물장올에 쓰인 장이라는 글자는 무얼 담으려고 했을까?
물장오리오름 정상부 물이 가득 들어찬 화구호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런 한자의 뜻을 과도하게 추종하는 나머지 지명이나 식물과 같은 어떤 자연물의 이름 유래를 추정할 때도 이렇게 글자의 뜻에 집착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지명에도 이와 같은 사례를 볼 수 있다. 함경남도 장진군은 고려 말에 '하가루'라 했다. 여가서 '하'는 고어로 크다는 뜻이고, '가루'는 강 또는 나루라는 뜻이다.
이러던 것이 1667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큰 강과 큰 늪이 많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긴 나루라는 뜻으로 장진이라 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긴 나루'라는 말은 후에 한자 '장'의 의미를 살려 이렇게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설명을 보면 '하가루'는 '한 가람'의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이것을 한자화 하면서 장진으로 했다는 것이다.
황해남도 장연군은 용정소, 모정소, 검우소 같은 이름난 큰 소들이 길게 놓여 있는 고장이므로 고구려 때부터 장연군으로 불렀다. 일명 장담이라고도 불렀다. 역시 '큰 소' 즉 고어로 '한 소'의 '한'을 '장'으로 표기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의 의역 자로 쓰인 '장'으로 표기된 지명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영황에 따르면 충청도 비인현의 남쪽 19리(권20)에 있는 '장배곶'은 '한배곶'의 표기이며, 전라도 정읍현 북천(권34)에 있는 '장교(長橋)'는 '한다리'를 표기한 것이다. 또한 장평산(長平山)은 갑산부의 동쪽 15리(권49, 갑산)에 있으며, 장평산고성(長坪山古城)은 갑산부의 동쪽 13리에 있는데 석축으로서 둘레는 2600척이며 높이는 9척이다. 여기에서 갑산의 장평산을 표기한 장평산(長平山)과 장평산(長坪山)은 같은 지명으로 '長平/長坪'은 '한 벌'의 표기라는 것이다.
장올악을 북한에선 큰 오름이란뜻의 '하늘오름'으로 해석
장올악은 어떤가? 놀랍게도 북한 학자가 쓴 논문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장올악'은 '한/오롬>하늘오름'의 표기로 되는데, 한라산의 중턱에 있는 산을 '하늘오름'이라고 하는 이 이름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라고 한 것이다.
한라산 백록담(산악인 김경미 제공).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장올악'은 '한오롬', 즉 '큰 오름'이면서 '한 오름'이고 '하늘오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장'은 '대(大)'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 오름이 한라산 중에서 대단히 넓고 큰 오름이라는 점으로 볼 때 충분히 수긍이 간다. 다만, 제주도에 있는 이 오름에 대해 북한에서는 '하늘오름'이라고 부른다는 것인데 이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로 제주지역의 지명은 물론 여타 제주어 연구에서 북한어에 대한 비교검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설명들을 종합해 보면 오늘날 물장오리라는 오름 이름은 첫 기록이 지금부터 거의 500년 전에 발간한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한자표기 '장올악(長兀岳)'이다. 위의 북한 학자는 이것은 '크다' 또는 '하늘'이라는 뜻의 '장'과 '산'의 뜻인 '올', 그리고 또 '산'의 뜻인 '악'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형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올악'은 원래 '한올'이었단 말인가?
장올악의 장은 長(장), (장), 藏(장)으로 다양하게 나타나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런 글만 접하게 된다면 당연히 이걸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올악의 '장'을 나타내기 위해 표기에 동원한 한자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는 게 문제다. 지금까지 찾을 수 있었던 '장'의 한자 표기는 長(장) 외에도 (장)도 있고, 藏(장)도 있다. 왜 이렇게 흔히 쓰지도 않고 쓰기도 어려운 글자를 골라다 썼는가. 이건 그 뜻을 쓰려고 했다기보다 그 소리를 중시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짜 제주도 고대인들이 불렀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獐(장)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자는 '노루 장'이다. 백록담을 '바쿠노르'라고 했던 사람들은 '장올악'도 산꼭대기에 호수가 있으므로 '노르'가 있는 산 즉, '노르올'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 노르를 나타내려고 '노루 장(獐)을 동원한 것이다. 이런 방식을 훈가자라 한다. 한자를 훈으로 읽되 그 뜻은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어느 시기에 소실되었다. 한자를 차용하면서 '노루'를 나타내는 글자가 '장(獐)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뜻을 살리게 되면 이 이름 속에 짐승 노루와 관련이 있지나 않을까를 염려해서 이렇게 비틀어서 쓰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노루를 '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장올'이라고 이어받았고, 그 후 '장올'은 '장올악'으로 이어지다가 이마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집단이 소리가 같은 長(장), (장), 장(藏) 등으로 받아쓴 것이다. 물장오리오름이란 장오리오름에 호수를 강조하여 물이 접두사로 붙게 된 말이다. 장오리오름마저도 장+오리+오름의 구조다. 따라서 오늘날의 명칭 '물장오리오름'은 '물+호수+산+산'이란 뜻이다. 물장오리오름을 태초에 '노르올'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