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향토유산 3호이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기준어미나무'로 정한 제주시 오등동 왕벚나무가 5일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운 채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2018년 명지대·가천대 연구진과 공동 연구해 발표한 논문에서 이 나무를 '일본 왕벚나무'라고 추정했는데, 이를 두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희만기자
왕벚나무 원산지·기원 논란 되풀이국립수목원 2018년 연구 논쟁 여전왕벚 둘러싼 ‘사실·오해’ 정리 시급본보 10회간 문제 진단·해법 모색
[한라일보] "왕벚나무를 둘러싼 원산지와 기원 논란을 마무리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은 셈이다."(2018년 9월 산림청 국립수목원 '보도자료' 중) 그로부터 4년이 넘었습니다. 왕벚나무 기원 논란은 올해도 되풀이됐고, 국립수목원의 이전 발표는 되레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국립수목원이 올해 다시 '후속 연구'에 나선 것은 이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드러냅니다.
이에 본보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당시 연구부터 들여다봅니다. 논란의 시작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왕벚나무에 대한 사실과 오해를 정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앞으로 10회에 걸친 기획 '왕벚을 부르다'는 후속 연구의 과제를 진단하고 전 세계 유일하게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가치 등을 조명합니다.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 한라일보 DB
|국립수목원 2018년 발표 연구 무얼 담았나
국립수목원은 2018년 '세계 최초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 유전체 해독'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명지대·가천대학교 연구팀과 공동으로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전체 유전체를 해독해 냈다는 내용입니다. 이 연구 결과를 담아 세계적 저널 '게놈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논문에는 명지대와 국립수목원 연구자를 제1저자로 모두 11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전에 국립수목원은 두 대학 등에 위탁해 '한반도 특산식물 종분화 및 기원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모두 10개년 계획으로 짜인 이 연구에서 왕벚나무 전체 유전체 분석은 2014년과 2015년, 두 해에 이뤄졌습니다. 그 대상은 천연기념물 159호로 지정된 제주 봉개동 자생 왕벚나무 1그루였습니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위탁의 범위는 한 개체였지만 그것만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2018년 발표 전까지) 3년에 걸쳐 논문화 작업이 이뤄지면서 비교 연구 등이 진행됐다"고 했습니다. 저널에 실린 최종 논문에는 위탁 연구팀이 전체 유전체를 모두 해독한 봉개동 왕벚나무와 그 반경 3㎞ 안에서 자생하는 벚나무(왕벚나무 4개체, 올벚나무 3개체, 벚나무 3개체, 산벚나무 1개체), 일본과 미국에서 수집한 '일본 왕벚나무' 4개체 등 모두 16개체가 분석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당시 발표된 연구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중 하나가 제주 자생 왕벚나무가 올벚나무를 모계,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자연 잡종 1세대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나오는 '노새'처럼 왕벚나무도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종의 교잡종이라는 겁니다. 다만 엄마 나무를 올벚이라고 특정한 것과 달리 아빠 나무는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라며 사실상 '벚나무'류로 남겨 뒀습니다.
또 다른 핵심은 제주 자생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유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겁니다. 연구진은 흔히 가로수로 심어진 재배 왕벚을 '일본 왕벚나무'라고 정하고, 이를 '올벚나무(모계), 오오시마벚나무(부계)로 형성된 인위 잡종으로 알려졌다'고 했습니다.
이 다름을 근거로 연구진은 또 다른 추론을 내놨습니다. '일본 왕벚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개체들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그룹으로 묶인, 제주 관음사 왕벚나무 1개체를 사실상 '일본산'으로 판단한 겁니다. 그러면서 연구진은 이 개체가 재배 중에 탈출해 야생화됐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2015년 제주 자생 왕벚나무 기준어미나무로 지정한 오등동 왕벚나무. 강희만기자
|제주 관음사 왕벚 '일본산'?… "단정 위험"
논란이 컸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일본 왕벚나무'의 실체가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별개의 종으로 본 데다 제주 자생 왕벚나무 1개체(오등동 왕벚나무, 향토유산 3호·기준어미나무)를 '일본 왕벚나무'라고 특정한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산림청 내부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부분이었던 탓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국립수목원이 후속 연구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전 연구를 맞다 틀리다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제주 왕벚과 일본 왕벚이 명확히 구별됐다면 후속 연구도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전체 연구에서 야생 왕벚과 재배 왕벚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는 크게 이견이 없다"면서도 "제주 자생 왕벚나무의 변이 폭 등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확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준어미나무(오등동 왕벚)를 특정적으로 일본산이라고 단정한 것은 위험했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애초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은 국립수목원이 연구 수행과 발표 과정 등에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제주 자생 왕벚나무를 연구했던 또 다른 학자도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학자는 "DNA(유전정보를 담은 화학물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DNA가 같으면 같은 종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DNA가 다르다고 해서 같은 종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단편적으로 DNA 부분으로만 봤을 때 야생 왕벚이 재배 왕벚의 DNA 프로파일을 가질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면서 "현재까지 확인된 제주 자생 왕벚나무(235그루)와 재배 왕벚의 유전형을 폭넓게 조사하면 그 기원에 대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