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10) 정원 가꾸는 김학우 씨
올해로 약 300년 된 고목과 만남
2000평 빈 밭을 울창한 정원으로
전국 첫 '로즈마스터가드너' 인증
생활 속 심고 나누는 즐거움 전해
입력 : 2023. 05.24(수) 11:02 수정 : 2023. 10. 05(목) 15:13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최근 전국 첫 '로즈마스터가드너'로 인증 받은 김학우 씨는 올해로 20여 년째 정원을 가꾸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불현듯 찾아온 만남처럼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한 그루 두 그루 더 심은 게 시작이 됐다. 꽃 하나, 풀 한 포기도 손수 뿌리내리게 했다. 텅 비었던 2000여 평의 땅이 이제는 수많은 생명을 품는다. 올해로 20여 년째 정원을 가꾸고 있는 김학우(67) 씨의 이야기다.
|우연처럼 만난 제주, 그리고 진귤나무
그가 제주에 온 것부터가 어찌 보면 우연이었다. 고향인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1991년 제주로 발령 받아 내려왔다. 도심의 복잡함이 싫었던 그에게 제주는 "천국"이었다. 그는 "서울에선 다음날 출근을 위해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 몇 번 출구로 지하철을 타야 덜 막힐지까지 계산하며 움직였다"며 "제주에선 이런 '숫자 싸움'을 하지 않아도 돼 좋았다"고 했다.
제주 살이 8년차에 대뜸 "일을 벌렸다". 농사일은 전혀 몰랐지만 감귤밭을 사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주에 계속 살고 싶다는 거였다. 하지만 난생 처음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딱 2년 농사를 짓고, 감귤 값이 바닥을 치던 해에 폐원했다.
감귤나무를 모두 뽑아내던 그때에도 '일곱 그루'만은 지켰다. 그의 정원을 있게 한, 올해로 약 300년 된 '진귤나무'다. 당시만 해도 시골이나 다를 거 없던 제주시 해안동, 찾기도 어려운 곳에 있는 땅을 덜컥 산 것도 사실 그 나무 때문이었다. '오래된 귤나무'가 진귤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재일 교포였던 땅주인과 만난 뒤였다.
"왜 이렇게 구석진 땅을 사려고 하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저기 조그만 귤이 열리는 나무가 마음에 든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그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옛날에 이곳이 '과원'이었는데, 여기에서 딴 귤을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말이지요. 그만큼 오래된 나무인데, 작감류를 모두 베어 내던 때에 잘려 나갈 뻔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이 어렵게 지킨 나무였으니 저에게도 끝까지 지켜달라고 하셨지요. 저 역시 그 나무가 좋아 땅을 사려는 거였기에 그러겠다고 약속했지요."
김학우 씨의 정원에 있는 약 300년 된 진귤나무. 신비비안나 기자
굳은 약속처럼 지켜낸 진귤나무는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졌다. 2001년, 일곱 그루만 덩그러니 남은 2000여 평 밭에 나무를 하루씩 더 심었다. 땅을 다지고 큰 나무를 옮기는 것만 장비의 힘을 빌렸지, 나머지는 학우 씨와 아내 허진숙 씨가 직접했다. 그렇게 10여 년쯤 흘렀을 때 정원의 모습이 갖춰졌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묘목을 살 때 햇빛과 물을 좋아하는지, 추위에 얼어 죽지 않는지를 꼼꼼히 묻고 심어도 잘 자라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혼자 실험하듯 몸으로 깨달으며 배우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 와서 단 한 번이라도 이사를 다니지 않은 식물이 없다"며 그가 웃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지식은 '참고'할 뿐 억지로 공부하진 않는다. 새로 보는 꽃을 사면서도 이름조차 묻지 않는다. 재미있어 하는 일을 재미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맨날 회의다 뭐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는데, 여기에서도 그럴 필요가 있느냐"면서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심고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김학우 씨가 정원의 시작이 된 진귤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심고 가꾸고 나누는 '마스터가드너'
그의 정원은 틀에 박힌 것과 거리가 멀다.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원 여기 저기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는 "자연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시작은 그가 했어도, 자연이 있어 더 자연스럽게 정원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그의 정원은 2017년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발간한 '가보고 싶은 정원 100'에 오르기도 했다.
"제가 아무리 예쁘게 심어 놔도 저절로 씨가 날아가서 자라는 위치가 최고의 적지입니다. 그게 제일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지요. 잡초가 무성해 지면 귀하게 심은 식물이 죽을까 뽑기도 하는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제가 뭐라고 어떤 건 살리고, 어떤 건 죽이느냐 하는 거죠. 사람도 똑똑한 사람만 있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저처럼 모자란 사람도 있고 해야죠.(웃음)"
그의 정원은 알음알음 알려졌다. 그가 '마스터가드너'에 들어선 것은 소문을 듣고 그의 정원을 찾았던 제주농업기술센터 관계자의 권유에서였다. 2010년 국내 처음으로 제주에 '마스터가드너'라는 이름이 도입된 이듬해부터 전문교육, 인턴십 과정을 차례로 거쳤다.
올해로 마스터가드너로 활동한지 10년째, 그는 전국 첫 '로즈마스터가드너'가 됐다. 같이 교육을 받고 활동해 온 임이란, 송진화 씨와 함께였다. 로즈마스터가드너는 마스터가드너 인증을 받은 뒤 10년간 해마다 전문교육을 받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 온 경우 심사를 거쳐 자격이 주어진다.
김학우 씨의 정원 입구. 신비비안나 기자
"심고 가꾸고 나눈다." 그는 마스터가드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물이나 정원을 가꾸기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일상에서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조언하는 존재가 마스터가드너다. 이들이 퍼트리는 원예는 꽃과 나무를 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베란다에 한 평 정원을 만들어 과일과 채소를 키우고 그걸 따 먹는 즐거움까지 얘기하는 게 마스터가드너다. 그의 말처럼 "생활을 가드닝"하는 셈이다.
현재 제주에는 마스터가드너 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마스터가드너를 배출한 지역치고는 적은 수다. 전국에서 관련 교육이 제일 먼저 시작됐지만, 아직 5기 밖에 배출되지 않았다. 제주를 뒤따랐던 다른 지역에서 12~13기가 나온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도 마스터가드너의 일입니다. 이런 활동이 활성화되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도 있겠지요. 제주는 마스터가드너의 발상지입니다. 앞으로도 마스터가드너가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오늘도 정원을 가꾼다. "손 마디마디가 골병이 들고 아파도 힘든 걸 모른다"는 그다. 정원 관리가 점점 힘에 부쳐도 계속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즐겁기 때문이다. "정원은 저를 움직입니다. 항상 실천하게 하고요. 할 일을 제때 하지 않고 요령을 부리면 그만큼 힘들어진다는 것도 일깨워주지요. 지팡이 짚고라도 나가서, 힘 닿는 한 할 수 있는 게 이 일입니다. 그래서 정원 일을 계속하게 되지요."
지난 20여 년간 정원을 가꿔 온 김학우 씨. 신비비안나 기자
◇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관련기사를 보고, 비슷한 환경에서 과수원과 정원이 같이 가꾸며, 퇴직후 행복한삶을 살아가는농부임니다. 다른게 있다면 감귤소득과 정원이 있다는것, 작년 8월에 kbs1TV정원에 발견, 손주들에놀이터에서 방영했어구 3일전에 탐나는제주에서도 방송됬어지요. 소재지 제주시삼양동010,5652.4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