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말 기준 관광호텔 등 관광숙박업소만 421개소인 제주에서도 이용이 편한 장애인 객실을 찾기 어렵다. 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전에 방문할 때만 해도 장애인 객실 3곳이 있던 호텔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예약할 땐 2곳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번 여행은 인원수가 많지 않아 그 호텔로 예약했는데 안전손잡이가 설치돼 있지 않아 일반 객실과 똑같은 거예요. 거기에 묶는 4박 5일 동안 샤워도 못하고 호텔 로비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써야 했어요."
휠체어를 타는 전윤선 씨가 제주 여행 전에 매번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숙소다. 현행법(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따르면 30실 이상 객실을 보유한 일반·생활숙박시설은 전체 객실의 1%, 관광숙박시설은 객실 수와 관계없이 3% 이상을 '장애인 등이 이용 가능한 객실'로 보유(2018년 1월30일 이전 신축 등 숙박시설은 0.5% 이상)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선택지'가 적다. 장애인 객실이 전체 객실 수에 비해 극히 일부인데다 실내 편의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불편을 겪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말 기준 관광호텔 등 관광숙박업소만 421개소인 제주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장애인 객실 없고 있어도 불편
"죄송합니다. 호텔 입구가 계단이어서 (휠체어 타는 손님은) 받을 수가 없어요." (제주시 A관광호텔, 객실 약 100실)
본보가 관광호텔업으로 등록된 도내 숙박시설 10곳을 전화 조사한 결과 이 중 3곳은 장애인 이용이 어렵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쓸 수 있도록 갖춰진 객실이 없거나 호텔 출입구부터 휠체어 진입이 불가한 경우였다.
이외에 나머지 7곳은 장애인 전용 객실이 있거나 모든 객실을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부 시설까지 꼼꼼히 따져보면 편히 묵을 수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장애인 객실 1곳이 있다"는 B호텔(100객실 이상)은 "(휠체어를 타면) 객실 내부 이동이 불편할 수 있다. 휠체어 크기가 클 경우 객실 입구 또는 복도에 세워 두면 된다"고 했다.
C호텔(약 100객실)은 "전 객실 모두 장애인 이용이 가능하다"면서도 "안전손잡이가 설치돼 있는 객실은 1곳"이라고 했다.
객실 300실을 보유한 D호텔은 "장애인 전용 객실은 없다"면서도 "일부 층부턴 방지턱이 없어 (장애인도) 이용 가능하다. 다만 화장실에는 턱이 있어 호텔 로비 장애인 화장실을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을 보면 장애인 객실은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객실 바닥면에는 높이 차이를 둬선 안 된다 등의 세부 기준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곳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윤선 씨가 방문했던 부산의 한 호텔 장애인 객실. 화장실부터 욕실까지 휠체어로 이동 가능하고 안전손잡이도 적절하게 설치돼 있다. 침대 역시 휠체어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높이다. 윤선 씨는 "국내 대부분 호텔의 침대와 이불은 면으로 감싸 있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쓰기엔 많이 힘들다"면서 "이곳은 침구까지 잘 미끄러지면서도 가볍고 따뜻한 걸로 쓰고 있었다"고 했다. 장애인 객실 설치 세부기준을 넘어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전윤선씨 제공
|안 지켜도 그만?…"상시 감독 어려워"
장애인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도내 숙소 정보도 제한적이다. 제주도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는 '이지제주' 홈페이지를 통해 도내 숙박시설의 장애인 객실 여부부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휠체어 접근 가능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무장애 관광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숙소는 47곳에 그친다.
제주도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 관계자는 "3년에 한 번 도내 숙박업소의 관광약자 접근 가능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해 대상이었던 관광호텔 127곳 중에 원활하게 조사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47곳이었다"면서 "강제성을 띤 조사가 아니다 보니 이를 거부하거나 만실 등을 이유로 응하지 않는 곳이 있다"고 했다.
숙박시설이 장애인 객실을 갖추는 것은 법적 의무사항이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에 더해 이행강제금, 벌금까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에선 관련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를 상시 감독하고 처분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장애인등편의법에는 5년에 한 번 의무인 장애인 편의시설 전수조사와 별개로 매년 표본조사 또는 전수조사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면서도 "하지만 예산, 인력 등이 수반되는 일이다 보니 이를 시행하려면 정책 결정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고 있는 윤선 씨.
* 지체장애인인 전윤선 씨는 2007년 첫 제주 여행을 시작으로 휠체어를 타고 꾸준히 제주 찾고 있습니다. 여행작가이자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이기도 한 그는 제주에서 '장애'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윤선 씨의 휠체어 제주 여행'은 그가 제주에서 마주했던 불편을 따라 무장애 관광지로서의 제주의 현실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