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잘 살아온 우리 모두가 '모델'이죠" [당신삶]

"지금껏 잘 살아온 우리 모두가 '모델'이죠"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12) 모델로 '제2의 인생' 사는 고성림 씨
  • 입력 : 2023. 08.09(수) 14:53  수정 : 2023. 10. 05(목) 15:11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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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모델'에 도전한 고성림 씨는 "시니어 모델은 '롤 모델'"이라며 즐기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50대 후반에 다시 찾아온 '사춘기'
"하고 싶은 거 하자"며 새로운 도전
시니어모델에서 모델 키우는 강사로
바른 자세·보행으로 건강한 삶 '선사'


[한라일보] 50대 후반 나이에 또 다시 '사춘기'가 찾아왔다. 젊었을 때와는 다른 무게의 질문이 던져졌다. '이대로 살 것인가'. 그 고민 속에 스무 가지 버킷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것을 적은 목록)를 적어 내려갔다. 60에 가까운 나이에 런웨이에 선 고성림(62) 씨의 이야기다.

그의 이력을 놓고 보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간호대학을 나와 종합병원 등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성림 씨다. 조산소와 산후조리원을 차렸던 경험도 있다. 제주는 물론 국내에도 '산후조리원'이라는 개념이 없던 1990년대의 일이다. 결혼한 뒤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일을 놓지 않기 위해 그가 만든 길이었다.

돌이켜 보면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성림 씨는 "하고 싶은 것을 했다"고 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치면서까지 조산사 트레이닝에 들어간 것도 그랬다. 성림 씨는 "아이를 잉태하고 분만하고, 키우는 과정이 굉장히 신비로웠다"고 했다. 서른 초반에 조산소를 열었고, 이후 산후조리원으로 바꿔 가며 10여 년을 운영했다.

일을 접고 나서도 건강 교육 등의 사회 활동을 이었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고 그가 말했다. 비슷한 고민은 나이 60을 앞두고 다시 찾아왔다.

"환갑이란 나이가 저에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어요. 육십 하나 이후의 삶은 '인생의 2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지금처럼 살지, 아니면 뭔가를 계기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지 고민을 하게 됐지요. (그때 생각한) 스무 가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시니어 모델'이었어요. 모델이 되겠다는 것보다 꼿꼿한 자세와 삶의 자부심을 갖는 모습에 느낌이 왔죠."



|약 1년 배움 끝에 선 '런웨이'

마음이 서자 성림 씨는 바로 움직였다. 2019년 제주에서 서울까지 가서 아카데미 등록을 마쳤다. 그때만 해도 모델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사실 생각조차 못했다. 키는 물론 얼굴까지 정해진 기준 안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성림 씨는 "당시에는 저 역시 기성 모델만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모델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바른 자세, 바른 보행을 통해 자기 내면을 비출 수 있는 건강 활동으로 모델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바르게 걷는 것부터 모델 워킹까지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결코 쉽진 않았지만 "모르는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일이 굉장히 재밌었다"고 성림 씨가 말했다. 거의 1년을 들여 모든 과정을 마쳤고, 마침내 런웨이에 서게 됐다. 여느 모델처럼 오디션을 거쳐 따낸 소중한 기회였다.

성림 씨는 "지금까지 패션쇼 무대에만 50번 이상 선 것 같다"면서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 섰던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런웨이 모델로 시작한 활동은 광고 모델, 연기 등으로 폭넓어졌다. 그렇게 경험을 쌓고 지난 2021년 제주에 내려 왔다. 시니어모델 등을 키우는 '모델강사'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시니어 패션모델 과정을 맡아 지도했다.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것처럼 모델 일을 통해 누구나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끌게 된 것이다.

모델 워킹을 하고 있는 고성림 씨. 그는 50대 후반 나이에 처음 런웨이에 선 이후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신비비안나 기자

그가 가르치는 것은 '진짜 모델'이 되는 법이 아니다. 가장 우선은 '건강'이다. 바른 자세와 보행, 모델 워킹을 통해 몸을 바로 하는 '기본'과 삶을 표현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강단에 설 때마다 말씀드려요. 우리 모두가 이미 모델이라고 말입니다. 자식들의 엄마 아빠로서 굉장히 존중 받는 분들이고, 사회에서도 자기 본분을 잘 해내신 '롤 모델'인 거죠.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삶을 워킹과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표현해 내는 게 바로 모델이에요. 다른 게 없어요. 그러니 재밌게, 신나게 즐기라고 말씀드리죠."

|제주 모델 위한 무대 만들기

그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제주에서 시니어 모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일이다. 누구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성림 씨가 먼저 패션쇼 개최를 제안하며 시니어 모델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배운 것을 실천하면서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제 역할이라 생각했다"면서 "이젠 제법 많이 알려져 섭외가 오기도 한다"고 웃었다.

제주시 이도2동 '제주시니어모델협회'에 걸려 있는 고성림 씨의 모델 활동 사진. 신비비안나 기자

그의 모델 키우기는 '시니어'라는 특정 연령에 한정되지 않는다. 재작년부터 '나도 모델이다'라는 프로그램으로 도내 발달장애인을 지도하고 있다. 그를 중심으로 구성된 '제주시니어모델협회' 회원들도 함께하고 있다. 즐기면서 하는 일에 의미를 더해 보자는 뜻을 모았다.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큰 것은 즐거움이에요. 짧은 순간이라도 집중을 하며 자신을 표현하다 보면 자신감도 얻을 수 있죠. 함께 무대에 설 때면 회원들이 메이크업을 해 주고 평소와 다르게 꾸며 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다들 엄청 행복해 하세요. 그 행복이 저희에게 전달되는 것만으로 보람이지요."

나이 60에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그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성림 씨는 "거대한 꿈은 없다"면서도 "누가 됐든 바른 자세, 바른 보행을 통해 건강한 삶을 사는 데 조금의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꺼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다독이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시니어 모델의 '놀이마당'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나이가 들 수 있도록 함께하는 장을 만들고 싶고요. 제주에서 패션쇼를 하면서 지역 예술과 문화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려면 우선 저부터 건강해야 되겠죠.(웃음)"

고성림 씨가 모델 워킹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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