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 09.06(수) 13:28 수정 : 2024. 08. 15(목) 00:25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30년 이상 교도관으로 일하다 최근 세대 돌봄가에 도전하고 있는 윤평식 씨가 인터뷰 중에 환하게 웃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재작년말까지 30년 넘게 교도관 근무 퇴직 이후 세대 돌봄가로 새로운 도전 수십년 나이차 넘어 놀이 등으로 교감
[한라일보] "처음에는 좀 걱정이 됐어요. 왜 나이든 할아버지가 왔냐며 꺼리진 않을까 하는 거였죠. 그런데 같이 손뼉을 치며 놀아 보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비 '세대 돌봄가'로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윤평식(61, 제주시 화북) 씨가 말했다. 비석치기부터 투호, 신발 던지기까지. 함께 신나게 놀다 보니 50년의 나이 차는 생각만큼 높은 벽이 아니었다.
|교도관으로 만난 아이들
그의 오랜 직업은 교도관이었다. 재작년 말 퇴직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한 직업으로 살았다. 군 제대 이후 육지 제과 공장, 조선소 등에서 갖은 일을 하며 공부할 돈을 모았고, 1989년 제주에서 교정직 공무원 시험에 붙으며 시작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일이 많다. 봉사대를 만들어 운영했던 것도 그 중에 하나다. 첫 시작은 지역의 보육원을 돕는 '교정봉사회'였다. 어린 나이에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게 안타까웠던 평식 씨가 1991년 꾸린 단체다.
"당시에도 만 18세 미만이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보육원 봉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보육원 출신이라고 해서 범죄에 잘 빠지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다른 곳보다 저희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더 마음이 쓰였다. 평식 씨는 교정봉사회를 통해 아이들과 바깥 구경을 다니고, 생일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 20명이 마음을 모았다. 평식 씨는 이를 시작으로 수용자를 돕기 위한 '한라교정봉사회'를 만들었고, 직장 밖에선 헌혈봉사회에 참여하며 봉사활동을 이었다.
'세대 돌봄가 양성 과정'을 통해 아동 돌봄을 실습하고 있는 윤평식 씨. 아이들과 전래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경력잇는여자들협동조합
|'돌봄'으로 만난 아이들
아이들과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세대돌봄가 양성 사업' 공고를 보고 나서다. 그때의 기억에 '아동 돌봄'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반대의 시선도 있었다. '나이가 들었는데 누가 아이를 돌보는 일에 써주겠느냐'는 거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막내딸이 얘기했다. "아빠 적성에 맞을 것 같아요. 한 번 지원해 보세요."
퇴직 이후에도 기회가 주어지면 뭐든 하겠다던 평식 씨였다. 거기에 딸의 응원이 더없이 큰 힘이 됐다. 그는 "되든 안 되든이라는 마음을 먹고 지원했는데 덜컥 뽑혔다"면서 "저까지 3명만 빼고 모두 여성분이었다. 버틸 수 있을까 했는데 실습 과정까지 오게 됐다"며 웃었다.
세대 돌봄가가 되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퇴직하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새롭게 깊어졌다.
"교육의 첫 시작이 저희를 돌아보는 거였습니다. 그 속에서 불현듯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또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있지 못했을 테니까요. 어떤 삶을 살았을지도 몰랐을 테고요. 예전에는 잠들기 전에 고마운 사람 한 명, 한 명을 생각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해 합니다."
그는 아동 돌봄에 참여할 준비를 하며 그림책, 전래놀이를 다시 접했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했던 놀이를 다시금 기억해 내고, 몰랐던 놀이는 새로 배우기도 했다. "전래놀이는 전통을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놀이 과정을 통해 승부욕은 물론 서로 협력하고 기다리는 법도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그가 말했다.
윤평식 씨는 "자라오면서 보고 느꼈던 경험을 전해주는 일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나와 다른 세대, 경험 들려주고파"
이러한 '놀이'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세대와 함께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세대돌봄가로 첫 실습을 할 때의 일입니다. 아이 한 명이 '유튜브를 보면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엄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다'고 서슴없이 말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희 세대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보다 너무 빨리 다른 걸 접하는 게 아닌지 안타깝기도 했고요. 세대 돌봄가를 통한 놀이, 이야기가 아이들의 인성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도전한 '세대 돌봄가'는 지역 안에서 아동 돌봄 문화를 확산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40대 이상 경력단절 중장년층에게 아동 교육, 돌봄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열어주면서다. 공무원연금공단과 제주특별자치도, 경력잇는여자들협동조합이 함께 제주형 세대 돌봄가 양성에 나서고 있다.
평식 씨는 "중장년이 배움을 통해 아동뿐만 아니라 노년까지 여러 세대의 돌봄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세대 돌봄가를 배출해 내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저는 몸이 움직이는 한은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돈을 버는 일이 아니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세대 돌봄 과정 수료식이 11월인데, 이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 활동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자라오면서 보고 느꼈던 경험을 전해 주는 게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라일보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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