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82] 3부 오름-(41)영천오름은 '돌세미오름', 절 영천사는 여기서 유래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82] 3부 오름-(41)영천오름은 '돌세미오름', 절 영천사는 여기서 유래
샘물이 흐르는 영천오름, 칡오름과 대비 지명
  • 입력 : 2024. 05.21(화) 00:00  수정 : 2024. 05. 21(화) 14:12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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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靈), 일본어로 '타마(玉)'라 읽어, 우리말 돌과 관련


[한라일보] 서귀포시 상효동 산123번지다. 표고 277m, 자체높이 97m다. '효돈천을 예전에는 영천천(靈泉川) 또는 영천(靈川)이라 했으며, 오름 기슭에는 영천(靈泉)이라는 맑은 샘이 있고, 영천사(靈泉寺)라는 이름난 절이 있었는데, 이에 연유해 영천오름(靈泉岳)이라 불리고 있다'라고 설명한 책이 있다. 흔히 범하는 오류가 이런 절 이름에 유래한다는 것이다. 오름이 있고 절이 있는 것이지 절이 있고 오름이 있는 게 아니다.

영천오름 동쪽 효돈천 계곡에서 연중 샘이 솟는다. 오름 남쪽에서 두 계곡이 합류한다.

지난 회에 영아리오름의 영(靈)은 고대어로는 '돌'로 읽었음을 밝혔다. 영아리의 영(靈)을 과연 '돌'이라 읽을 것인가? 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이 영(靈)이라는 글자는 한자 사전에는 '신령 령(영)'이라 했다. 문제는 이 신령(神靈)이라는 풀이 자체에 '영(靈)'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영(靈)'이 뭔가라는 질문에 신령(神靈)이라 답하고, 신령이 뭔가라는 질문엔 영(靈)이라고 답해야 하니 이건 완전히 순환 논리에 빠져 끝없이 반복할 뿐 정답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낱같은 단서가 일본어에 남아있다. 영(靈)을 일본어에서 '레이(れい)' 혹은 '료우(りょう)'라고 읽는다. 문제는 '타마(たま)'라고도 읽는다는 점이다. 구슬(玉)이라는 뜻이다. 구슬이란 돌을 공처럼 가공한 것을 말한다. 한자를 읽는 방식이 일본어는 국어와 다르다. 우리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만 한다. 예컨대 石을 '석'이라고 읽을 뿐 '돌'이라고 읽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어에선 石을 '슈쿠(しゃく)', '세키(せき)' 등으로 읽는다. 이처럼 한자를 읽을 때 음으로 읽는 경우를 음독(音讀)이라 한다. 그런데 이 글자를 '이시(いし)'라고 읽기도 한다. 원래 일본에 있던 고유어를 결부시켜 읽는 것이다. 이것을 훈독이라 한다. 이런 방식 때문에 훈독의 경우 일본 고유어가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삼국 시대엔 영(靈)을 '돌'이라 읽어


일본어에서 영(靈)과 옥(玉)을 똑같이 '타마'라고 읽는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일본 고대인들은 영(靈)이라는 글자에 '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나 '돌'이라고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는 혼 또는 영의 어원을 '생물 속에 사는 정신작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 있다.

영천 상류에서 바라본 영천오름, 이 계곡은 오름의 서쪽으로 돌아 흐른다. 김찬수

죽은 후 육체를 떠나 떠오르는 것, 그것은 썩혀도, 태워도 남는 돌 같은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한자 어원은 비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에 영험, 영감을 의미하는 무(巫)가 결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후한(기원후 25년~220년) 때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는 원래 구슬 옥(玉)과 비올 령(霝)으로 구성되며, 주술 도구인 옥을 가지고 비 내리기를 비는 행위를 구체화한 글자라 했다. 따라서 영(靈)이라는 글자에는 '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금관의 곡옥이나 불교의 사리 신앙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국어나 제주어에서도 그 속에 들어있는 본래의 뜻을 '돌'이라 지칭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전에서는 1447년(세종 29)에 편찬한 석보상절에 '이 탑이 이셔 영(靈)한 이리 겨시니라'라는 구절이 처음이다. 1576년(선조 9년)에 나온 한자입문서인 신증유합에 '령할 령(靈)'으로 설명했다. 이후에도 대부분 '령하다'의 뜻으로 썼다. 순우리말이라고 할 만한 어휘는 나오지 않고 오늘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령하다', '신령한' 등의 뜻을 가진 우리말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전 회에서 봤듯이 삼국 시대엔 이 글자를 '달'이라 읽었다. 영암(靈巖)을 백제 때에는 '달나', 마령(馬靈)을 '마돌'이라 했으므로 삼국 시대엔 영(靈)을 '달'이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천오름, 샘물이 흐르는 오름


그렇다면 영천오름은 무슨 뜻일까?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천천(靈泉川)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후 영천(靈泉), 영천악(靈泉岳), 영천악(泉岳), 영천(泉), 영천악(川岳), 영천봉(永川峰), 영천악(靈川岳) 등 관련 지명들이 등장했다. 오늘날 지도에는 영천악(靈川岳)으로 표기하였다.

영천오름은 오늘날의 지명으로 영천과 효돈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영천이란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해 산벌른내를 거쳐 내려오는 지류를 말한다. 이보다 동쪽 웃방애오름 동사면과 선돌의 상부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지류를 효돈천이라 한다. 그런데 영천에 있는 돈내코와 효돈천의 영천오름 가까이에선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나 흐른다. 이런 연유로 이 계곡을 영천천(靈泉川) 혹은 영천(靈川)으로 부른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천(靈川)이라 했을 수 있다. 끊임없이 샘솟아 흐르는 특성으로 볼 때 고대인들은 이 계곡을 '달내' 혹은 '돌내'로 불렀을 것이다. 이것은 가까이에 거의 평행하게 흐르는 신례천 때문이다. 신례천은 역사상 호촌천이라 했으며, 그 뜻은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내란 뜻에서 기원했다. 물이 흐르는 내와 물이 흐르지 않는 내의 대비 지명이다. 한편, 영천오름은 '달내'에 있는 오름이라는 뜻으로 '달내오름(靈川岳)'으로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달세미오름(靈泉岳)'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쌍둥이처럼 크기가 비슷한 칡오름 때문이다. 칡오름이란 호수오름이란 뜻이다. 샘물이 흐르는 오름과 호수가 있는 오름의 대비 지명인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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