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단편 영화제 심사를 보다가 함께 심사에 참여한 다른 심사 위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코미디 장르에 까다로운 편이시군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웃으라고 만든 영화에 그냥 웃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는지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앞에서 눈에 불을 켜고 개연성을 찾는 쪽이었다. 웃기기 위해 작정한 듯한 분장을 하고 캐릭터가 등장하면 경직된 자세가 되었고 첫 번째 웃음과 호응하지 못하면 엔딩까지 지루함에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까다로운 관객임에 틀림없었다. '웃음'이라는 것, '웃긴다'는 것이 내게는 몹시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 이를테면 알러지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반드시 반응하게 되는 것, 꽃가루에 재채기를 하는 것 같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신체와 감정의 반응에 바뀌는 나를 흥미롭게 느끼게 되는 것,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셀프 미스터리가 주는 설렘 같은 것들이 '웃는 순간'에 있었던 것 같다.
남동협 감독의 데뷔작 '핸섬가이즈'는 이런 나를 미칠 듯이 웃게 만든 영화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 타임 내내 말 그대로 저항 없이 웃었다. 험상궂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두 남자가 전원생활을 꿈 꾸며 내려온 오래된 집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인 이 영화는 코미디에 오컬트를 섞는 매쉬 업을 시도한다. 웃기고 무서운 가장 말초적인 장르 두 개가 영화 안에서 이질감 없이 섞인다. '핸섬가이즈'는 본격적인 웃음과 공포의 시동을 거는 초반부부터 속도를 낮추지 않고 전력질주하는 영화다. 단 한순간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외모 때문에 오해받는 두 남자가 처하게 되는 예측불허의 순간들'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핸섬가이즈'의 웃음 타율이 높은 이유는 '핸섬가이즈' 덕이 크다. 자칭 터프가이인 재필과 자칭 섹시가이인 상구는 그들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소중한 꿈과 단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재필과 상구다. 그러니까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두 사람을 끊임없이 오해하는 타인들 덕분에 '핸섬가이즈'는 코미디 영화로서 엇박의 유머가 먼저 유효하게 가동되기 시작한다.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난 후 이상하게 재필과 상구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두 시간이 채 못 되는 동안 내내 웃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남동협 감독과 이성민, 이희준 배우를 비롯한 영화의 스탭들은 자신들의 '핸섬가이즈'를 누가 뭐래도 최고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영화의 여기저기에 눅진하게 달라붙어 관객들에게도 잔향을 길게 남긴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관객이 꿈에서 만나면 단박에 잠이 달아날 것 같은 아저씨들을 이렇게 문득 그리워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