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나의 우물에서

[영화觀] 나의 우물에서
  • 입력 : 2024. 07.19(금) 00:00  수정 : 2024. 07. 21(일) 13:15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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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한라일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외로움에 쉽게 체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떠들썩한 무리에서 홀로 빠져나오는 순간에 느끼는 안도, 타인과의 접점을 줄여도 수축되지 않는 삶의 부피를 언뜻 체감할 때의 평화로움 같은 것들이 어느 순간 선연하게 다가올 때였다. 외로움의 부피를 덜 버거워 하는 스스로가 조금 낯설었지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물론 외로움은 익숙해진다고 친해질 수 있는 감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곁에 오도카니, 나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살아가는 외로움의 형상을 찬찬히 뜯어보고 때로는 그 마음까지 들여다 보는 것은 무척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외로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나와서 내 곁에 가만히 있다. 나의 부피 만큼의 외로움이 나에게서 나온다. 오직 나의 것인 그를 천천히 곱씹고 오랫동안 마음 안에서 굴려본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나의 깊은 곳에 그를 다시 둔다. 언제든 다시, 외로움이 들고 날 것을 알기에, 내 손으로 쓰다듬고 다독여야 할 나의 일부일음 알아 차렸기에.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규칙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이야기다. 홀로 살아가는 그는 매일 아침 이웃의 비질 소리에 눈을 뜨면 주저없이 이부자리를 정리한 다음 잠 들기 전까지 읽었던 책과 안경을 확인한 뒤 이를 닦는다. 유니폼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는 시각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이다. 문 앞에는 자동차 열쇠를 비롯한 외출에 필요한 것들이 정갈하게 놓여진 선반이 있고 선반 위 작은 접시에는 자판기에서 모닝 캔 커피를 사 먹을 동전이 있다. 히라야마는 캔 커피를 마시며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면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카세트 테이프를 재생시킨다. 군살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중년을 지나 장년으로 가는 듯 보이는 그는 매일 화장실 청소의 일과를 수행한다. 누구와도 길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 매일을 살아가는 그는 일과 틈틈이 우듬지를 보며 사진을 찍는다. 대개 묵묵히 보는 그는 삶의 어떤 순간 저항 없이 미소 짓는다. 빛의 호위를 받을 때, 작은 인사를 건넬 때 그리고 생명의 기특함을 발견할 때다. 히라야마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퍼펙트 데이즈'는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는 침착한 생활인이고 정갈한 취향을 가진 이다. 삶의 패턴도 공간의 형태도 미니멀리스트에 가깝다. 다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화는 보여 주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서는 지난 이력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학력이 그렇고 경력이 그렇다. 명함에 쓰여진 몇 글자가 되지 않는 것들은, 이력서에 촘촘히 쓰인 무수한 글귀들은 한 인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손 쉬운 도구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누군가를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인간은 삶의 많은 지점들을 거치며 수차례 비를 맞는다. 거센 폭우일 때도 있고 옷소매가 살짝 젖는 가랑비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맞은 빗물들이 한 인간의 안으로 스며 들어 각자의 우물 안에 담긴다. 그 우물은 누군가를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바삭하게 말라서 바스러질 것 같은 때가 삶에서는 종종 찾아온다. 입술이 마르고 몸의 일부분이 툭툭 꺾여 나가는, 마치 내가 마른 나뭇가지 같을 때 우리는 몸 안의 우물로 스스로를 축인다. 덧나지 않게, 모나지 않게 스스로를 적신다. 그리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각자만의 습기로 타인의 메마름 또한 슬며시 젖게 만든다. 작은 우물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삶의 어느 순간 누군가를 잠깐 적셔 삶을 살아가게 한다. 완전한 행복을 말하지 않아도 완성된 삶을 갈구하지 않아도 완벽하다고 흥얼거릴 수 있는 매일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존재한다.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다.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명배우 야큐쇼 코지의 연기는 관객을 전율하게 만들 정도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동이 트는 아침 차 안에 앉은 히라야마는 음악에 맞춰 삶을 자신의 표정에 포개어 놓는다. 회한과 감동, 후회와 애증, 그리움과 서러움이 온통 뒤섞여 누구도 그릴 수 없고, 색칠할 수 없는 온전한 한 사람의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펼쳐진다. 삶은 늘 정면에서 나를 마주한다는 것, 내가 지나온 모든 길들이 내 안에 새겨져 있고 울렁거리던 순간들도, 철렁했던 골짜기도 오로지 나만이 감각한 나의 날들이라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등을 온전히 밀어 다시 새로운 날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 우리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만의 날들로 채워져 있다, 완벽하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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