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무더위가 너무 심해서 역대급 더위도 너무 흔한 말이 되고 말았다. 가만히 앉아도 얼굴과 등에서 땀줄기가 흐르는 무척 더운 어느 날, 오랜만에 어린아이를 만났다. 찬 바람이 불던 7개월 전 볼 때보다 키는 훨씬 커졌지만 뭔가 달라져 있었다. 귀는 물론 목덜미까지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어서 얼굴에 땀이 흥건해서 보는 사람이 오히려 답답할 정도였다.
긴 머리카락을 좋아했지만, 여름에는 짧게 했던 터라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아이 마음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덥지 않냐고. 더워도 어쩔 수 없단다. 다른 아이들도 머리를 기르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다른 반에도 한 명 더 있다고 대답했다. 땀에 젖은 더벅머리를 올리며 대답하기를 좀 더 길러서 기부할 거란다. 개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를 만지지도 못하고, 사과 알레르기가 있어서 사과도 먹지 못하는 아이였다.
어쩌면 자기를 괴롭히는 이런 것들이 아이에게 다른 아이의 고통을 생각하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를 통해서 희망을 보았다. 그래서 살만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오늘을 사는 내가 아이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에 태어나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어느 시대나 풍요롭고 가난을 모르며 떵떵거리며 사는 집안은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또래는 비슷한 생활환경에서 자라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비교적 덜했던 시대였다. 유신정권이라는 절대권력이 판을 치던 시대가 지나고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억압과 독재로 점철된 암울한 시대가 끝난 듯했다. 자유를 향한 열정이었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도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하며 쓰러져갔다. 그 공간에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이면서도 일본인의 눈으로 조선인을 부리던 이들이 한자리씩 꿰차 행세했다. 이들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얼굴을 바꿔 이 시대를 활보하고 있다. 나라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장이나 독도문제 등을 다루기 위해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국가기관의 수장들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권이 없었으므로 나라가 아니었고, 그래서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은 일본의 황국신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쌀을 일본이 수탈한 것도 수출이라고 우기니 일본인들의 수산물 수탈에 저항해 일으킨 위대한 제주해녀항쟁도 부정해야' 할 판이다.
광복회장도 친일을 넘어 밀정이 나타났다고 통탄하고 있다.
또래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어린아이를 통해 희망을 보면서도 암울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분노가 치미는 것은 나만의 옹졸함일까.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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