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내가 누군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오만을 부릴 때 가장 외로웠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고 오도카니 벽을 쌓고 있을 때 몹시 힘에 부쳤다. 세상의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며 자조할 때는 눈물이 났고 멈추는 법을 알지 못해 그저 울다가 쓰러졌다. 결국 나를 제일 모르는 건 나였고 그런 나를 외롭게 만드는 이 또한 나였다는 것, 외로운 나를 혼자 두면서 아프게 알게 된 사실이다. 모두가 스스로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이상하게 미워한다. 정말 모두가 그렇다. 그런 우리가 타인에게 말 걸기를 멈춘 채로, 그저 스스로의 세상 안에 갇힌 채로 살아가다가 우연한 순간에 눈이 맞는 경험을 한다. 예상할 수 없는 찰나다. 놀랍게도 그 찰나의 경험이 많은 이를 살렸다. 그 순간은 기적 같은 악수로, 소나기 같은 포옹으로, 설명할 수 없이 맞춰진 주파수로 한 사람의 세상이 다른 이의 세상과 포개질 수 있다고, 비관의 낭떠러지에서도 낙관의 춤이 가능하다고 말해줬다. 열렬한 사랑보다 더 깊고 우정이란 이름보다 더 미묘한, 나를 알아보고 알아주는 당신과의 충돌, 너와 내가 우리로 무적이 되는 호기가 인생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아무도 모르는 채로 멸망하지 않았을까.
박상영 작가의 연작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첫 단편 [재희]를 각색한 이언희 감독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와 흥수라는 너무 다르고 너무 닮은 두 행성이 이 거대한 우주에서 우연히 맞나 서로 부딪혀 깨지고 각자의 조각을 서로에게 심은 채로 끝내주는 유영을 하는 이야기다. 세상이 쉬쉬하는 척 하지만 집요하게 흡집을 내기 딱 좋은 처지의 두 사람은 그런 스스로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이상할 정도로 미워하며 살아간다. 남들이 눈으로, 입으로 쉴 새 없이 쏘아 대는 화살들이 수시로 피부에 박히는데 재희와 흥수의 매일이 평탄할 리 만무하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혹은 너무 쉽게 마음을 열고 닫으며 이들은 스스로와 세상을 깡으로 버틴다. 믿는 건 그저 나로서 살아가는 일, 그게 언제까지가 되었건 나를 위해 버티고 감당하는 일, 고작 스무 살인 두 사람의 어깨가 이렇게 무겁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둘은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재희가 먼저였다. 흥수가 성소수자 임을 우연히 알게 된 재희는 술에 취한 채로 눈을 똑바로 뜨고 흥수에게 말한다. '네가 너인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가 있어.". 재희는 그렇게 정확한 언어로 당신의 전부는 약점이 될 수 없다고,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확언했다. 그 순간 흥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심장에 화살이 명중했다. 억지로 멈춘 이들의 심장을 다시 펄떡거리게 하고, 참고 있던 눈물을 흐르게 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뜨겁고 축축하고 씩씩한 영화다. 누가 누구를 사랑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으며 다만 답안지를 채워야 하는 이가 자신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답안지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쩔쩔매는 이에게 컨닝의 비법을 슬쩍 흘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비법이 바로 재희와 흥수 두 사람의 관계다. 영원한 사랑이 없다고 자조하는 이들에게 반대로 지금의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는 이들 모두에게 두 사람이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내는 형태가 하트 모양의 힌트로 보여진다. 그 형태는 우연히 포개어졌다가 종종 일그러지고 또 합쳐지며 갖가지 모양으로 변한다. 마치 손 안에 넣을 수 없고 정확하게 그릴 수 없는 사랑의 형상처럼 말이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각자의 사랑을 응원하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가 된 서로를 사랑한다. 그 사랑은 때로는 지치고 어렵고 포기할 만큼 힘들지만 나를 기어코 알아봐 준 서로에게 영원히 반한 채로 꿈틀대는 생명력으로 지속된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는 내내 타인에게 용기를 꺼내 놓는 일이 심장을 통째로 전달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여러 차례 생생하게 느꼈다. 너무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규정하고 겁내고 미워하는 이 혐오의 세상에서 말이다. 당신 자신이 당신인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상태가 어떤 상황에서도 약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기 앞의 생을 긍정하는 용감한 이들이 영원히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 번복할 사랑의 축제에 함께하길 바란다. 서로에게 열렬하게 반한 채로 말이다. 마치 우리에게 정답 이상을 알려준 고마운 두 사람 재희와 흥수처럼.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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