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03] 3부 오름-(62) 왕이메, 불룩하게 솟은 샘이 있는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03] 3부 오름-(62) 왕이메, 불룩하게 솟은 샘이 있는 오름
바리때를 닮아 바리메? 불교와 무관한 고대어 기원
  • 입력 : 2024. 11.05(화) 03:00  수정 : 2024. 11. 06(수) 17:16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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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상의 유사성만으로 중의 밥그릇같이 생겼다고 해석


[한라일보]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산1번지다. 표고 763.4m, 자체 높이 213m, 둘레 4694m, 저경 1643m이다. 오름의 평균 자체 높이가 81m이니 대략 그 3배에 달하는 매우 높은 오름이다.

오른쪽에 바리메가 보인다. 왼쪽으로 연결된 낮은 오름이 족은바리메(각씨묘)이다. 노꼬메에서 찍었다.

1653년 탐라지 등에 발산(鉢山), 1872년 제주삼읍전도 등에 발봉(鉢峰), 1954년 증보탐라지에 발이악(發伊岳) 등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 발리악(發里岳), 발이악(發伊岳)으로 부른다. 네이버지도에 바리메, 카카오맵에는 큰바리메로 표기했다.

이 지명 발산(鉢山)의 발(鉢)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바리, 바리때를 의미하는 훈독자, 산(山)은 메의 훈독자라 한 책이 있다. 이런 해석은 이 오름 입구에 간판과 비석에도 그대로 새겨 놓았다. 지명에 박혀 있는 언어가 고대어임을 망각하고 현대어로 착각한 결과이다. 바리때는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제주도에 불교가 널리 성행한 이후에 이 오름의 지명이 생겼다는 뜻이 된다. 제주도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대체로 6세기 말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까지 이 오름의 이름이 없다가 이 이후에나 생겼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오름이 특별히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바리메오름엔 샘이 있다. 역시 가메오름, 바메기오름, 노꼬메, 왕이메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리메의 '메'는 산(山)이 아니다. 샘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그렇다면 '바리'란 무슨 뜻일까? 바리를 발(鉢)로 표기한 건 훈가자 표기일 뿐이다. 즉, '발(鉢)'의 훈 바리때 혹은 바리인데 그중 바리만을 취하여 읽으라는 취지로 쓴 것이다. 이걸 음상의 유사성만으로 중의 밥그릇같이 생긴 데서 이렇게 불렀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바리'란 '불룩한', '부풀어 오른 부분’을 나타내는 말


'바리메'의 '바리'란 '불룩한', '부풀어 오른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큰'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알타이 제어에서 '불라'를 공통 어원으로 다양하게 파생했다.

가운데 보이는 작은 오름이 안천이오름이다. 족은바리메에서 찍었다. 김찬수

퉁구스어의 공통 어원은 '풀-'인데, 오로크어에서 '풀루'라 하고, 여타의 언어에서는 다소 멀어진다. 몽골어권에서는 원시 몽골어 '불-'을 공통 어원으로 분화했다. 할하어에서 '불르', 부리야트어 '불라' 혹은 '불루', 칼미크어에서 '불러'에 대응한다. 우리말에서는 '불룩하게 부풀어 있다'의 뜻으로 쓰는 '부르다', '부른' 등이 대응할 것이다. 제주어로는 '불룩하다'가 가장 근사하다. '불룩이' 혹은 '부룩이'는 '불룩하게'라는 말인데 어원상 '불'이 어간이다.

일본어에서는 고일본어에서 '바라-(ばら-)', 현대 도쿄어에서 '하라-(はら-)'로 나타나는데, '부어 오르게 하다'의 뜻으로 쓴다. '바리메'란 '샘이 있는 불룩하게 솟은 오름'이란 뜻이다. 붉은오름, 흙붉은오름, 밝은오름 등이 불룩하게 솟은 오름에 해당한다.

바리메 거의 가까이 붙어 있는 아주 낮은 오름을 '보릿자배기'라 한다는 채록이 있다. 이 지명 풀이가 재밌다. 오름이 마치 보릿가루를 반죽하여 국에 조금씩 떼어내 만든 '보릿자배기' 또는 '자배기(수제비)' 같다는 데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엉뚱한 해석이다. 바리메의 '바리'와 보릿자배기의 '보리'는 같은 말이다. '자배기'란 수제비가 아니라 '낮은 오름' 혹은 '얕은 오름'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보릿자배기란 불룩하게 솟은 오름 곁의 아주 낮은 오름을 지시하는 대비지명이다. '자배기'는 새제비, 우진제비, 자배오름 등과 어원을 공유한다.



보릿자배기, 각씨묘, 안천이오름, 모두 고대어 기원


바로 옆에는 족은바리메가 있다. 바리메에 비해 작다라는 뜻의 대비지명이다. 표고 725.8m, 자체 높이 126m이다. 해발고로 볼 때도 작을 뿐만 아니라 자체 높이도 훨씬 낮다. 둘레 3113m, 면적 688,020㎡, 저경 1110m로 규모에서 바리메에 비해서 작다. 족은바리메는 각씨악(角氏岳), 각씨묘(角氏墓), 소발봉(小鉢峯), 소발이악(小鉢伊岳), 소발이악(小發伊岳)으로도 쓴다. 각씨악은 각씨오름의 한자 차용 표기, 각씨묘(角氏墓)는 각씨묘의 한자 차용표기라 설명한다. 문제는 바리메가 무슨 뜻인지, 왜 각씨묘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인데 정작 본질은 슬쩍 피해 버리고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은 꼴이다. 각씨묘란 각씨메의 변음이다. '각씨'는 이후 나오는 여러 지명에서 추가로 설명할 기회 있을 것이지만, 이 말은 알타이 제어에서 '바위'를 지시한다. 족은바리메의 정상 부분이 바위로 되어있다는 데서 이런 지명이 붙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가까이에 또 하나의 오름 안천이오름이 있다. 족은바리메를 기준으로 바리메의 대칭 지점에 있다. 표고 742m로서 바리메 763.4m, 족은바리메 725.8m, 높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경, 면적 등 규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이 오름은 안천악(安川岳, 안천이악(安天伊岳), 안천이악(安阡伊岳 ), 안천악(安天岳), 안천봉(安川峰) 등으로 쓴다. 이런 지명들을 종합해 보면 이 오름은 안천이오름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 '안천이'가 무슨 말인가? '작은'의 뜻이다. 우리 고전에 '아츤', '아찬' 등으로 나오며, 이 말의 어근은 '앛-'이다. 안천이라는 작은 오름이란 뜻이다. '불룩하게 솟아 큰' 오름인 바리메, '바리메보다 작아' 족은바리메, 그보다도 작아서 '안천이'라 했다. 본 기획 48회 아끈다랑쉬, 52회 안친오름을 참조하실 수 있다.

바리메오름은 '샘이 있는 불룩하게 솟은 오름', 보릿자배기란 '바리메 곁의 아주 낮은 오름', 각씨묘란 '정상 부분이 바위로 되어있는 오름', 안천이오름은 '작은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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