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기록과 구전으로 전해 오면서도 실체가 감추어졌던, 제주도내 가장 오랜 사찰인 존자암의 옛터로 추정되는 영실의 ‘수행굴(修行窟)’이 본사 탐사팀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팀은 지난 11월 24일 영실일대에 대한 탐사도중 이 석굴을 발견한데 이어 지난 2일에는 관계 전문가들의 확인 작업을 거쳐 수행굴임을 밝혀냈다.
특히 고문헌에는 존자암의 옛 터가 수행동(修行洞)에 위치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어, 수행굴과 옛 존자암과의 관계는 물론 제주불교의 원류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실 동남쪽 해발 1,530m에 위치한 이 석굴의 길이는 약 28m로 40여명 정도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이 굴속에는 고문헌에 남아 있는 고승 휴량(休糧)이 장기간 수행했던 공간과 가로 4m X 세로 2m 규모의 온돌유구가 부서진채 남아 있다.
또 고려말∼조선조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청자·백자·기와편은 물론 각종 옹기 파편들이 널려 있다. 굴주변에는 대형 짐승의 머리 뼈가 남아 있고, 화덕과 땔감이 삭아진 채 남아 있다.
더구나 이 석굴은 종래 도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의 굴로 알려졌던 해발 8백m의 구린굴은 물론 국내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천연동굴로 확인돼 국내 동굴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석굴은 한라산 높이를 1950m라고 최초로 측정했던 독일 지리학자이자 ‘퀼른신문’의 특파원이기도 했던 ‘지그프리트 겐테’가 이틀밤을 묵었던 곳으로, 그의 유품으로 보이는 서양풍의 잉크병과 술병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1609년과 1702년 한라산을 등정했던 김치판관과 이형상목사의 기록에는 ‘영실의 동남쪽 허리에 석굴이 하나 있는데, 수행굴(修行窟)이라고 이름 부른다. 옛날에 고승 휴량이 살았었다고 하는데, 부서진 온돌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존자암은 원래 영실에 있었는데 서쪽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았다.
이에 대해 본탐사위원들은 물론 확인 작업에 참여한 동굴·고고역사 관계자들도 ‘이 석굴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