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

[한라칼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
  • 입력 : 2015. 12.15(화) 00:00
  • 편집부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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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 가운데 있는 들판은 황량하다. 태양은 낮은 조각구름 속에 그 자태를 감추기도 하고 때론 그 햇살을 비추기도 하지만 토지 위로 불어오는 습기를 품은 눅눅한 바람은 잿빛 비구름을 몰고 추적추적 빗줄기를 뿌려댄다. 비는 농민들의 마음으로 흘러들어 눈물이 되고 얼음으로 변해 감귤이 비에 썩고, 콩과 배추, 무에 이르기까지 다른 농업도 파산상태다. 지난여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아침 새벽이슬을 빨아들인 흙냄새를 맡으며 샛별이 내리던 저녁까지 입에서 푹푹 단내가 나도록 흘린 땀은 이 지경을 보기 위한 것이 분명히 아니었을 텐데.

이런 가운데 농민과 도민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최근 주변에서 일고 있는 땅값폭등이다. 토지시장 개방으로 빗장이 풀리면서 중국인은 물론 외부 투기세력까지 몰려들어 우리가 평생을 저축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으로 마구잡이로 땅을 사들이고 있다. 한라산과 오름과 소나 말을 방목하던 중산간 들판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곳곳이 거대한 호텔이나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아스콘 도로가 깔리며 커다란 주차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끝을 모르게 폭락하고 땅값폭등에 휩쓸려 우리가 팔고, 위정자들이 외자유치라며 팔아버린 그 넓은 토지 그 자리가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다. 관광지 주변에서 주민들은 국적 모를 관광 상품을 목이 쉬어라 관광객을 불러 팔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다 여기저기 들어서는 공동주택과 다가구주택들을 예전엔 엄두도 내지 못할 높은 가격으로 분양하고 이를 사들이고 있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다고 하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은 돈이 없고 절반이 넘는 도민이 주택이 없어 전세나 월세를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땅은 우리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것인데도 우리 세대가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우리 후손에게 지속가능한 안정된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토지는 농사를 지어 안정적인 생활할 수 있거나 젊은이들이 꿈을 키우며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생산기반이 아니라 주인이 바뀔 때 마다 가격이 오르는 거래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부모들이 팔았던 가격으로 토지나 주택을 감히 단연코 절대 다시 살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땅값폭등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토지와 노동 밖에 없는 대부분의 농민들, 몇 평의 땅과 집 한 채를 겨우 물려받은 후손들은 제주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갈중이 옷을 입고 민속촌에서 원주민 생활을 하거나 관광지 주변에서 목이 쉬어라 물건이나 팔아야 할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것들이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지금까지 안주해 온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의 행복과 쾌락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우리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이 땅값폭등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방치한다면 제주공동체는 가진 자와 없는 자, 팔아버린 토지에 거대한 관광시설을 만들어 그 토지를 팔았던 사람을 인부로 쓰는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시대를 탓하고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후손들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그 때 무슨 역할을 하였느냐고 물을 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송창우 약초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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