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플러스] ‘팔월멩질’… 제주의 색다른 풍경들

[휴플러스] ‘팔월멩질’… 제주의 색다른 풍경들
다가온 추석… 제주의 옛 명절풍습
  • 입력 : 2019. 09.06(금) 00:00
  • 이소진 기자 sj@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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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차례를 지내는 모습.

지리·문화적 거리만큼 타지역과 판이
명절의 시작은 ‘차례’ 아닌 ‘벌초’로
농번기 명절… 제편보단 상왜떡·송편
핵가족화 되면서 ‘걸맹’ 점점 사라져


추석. 제주에서는 '팔월멩질(8월명절)' 혹은 '가슬멩질(가을명절)'이라고 불렀다. 음력 8월 15일에 열린다고 '팔월멩질'이었고, 가을 초입에 하는 명절이라 '가을멩질'이라 불렀다. 세배를 하지 않는 '정월멩질(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의 추석 문화는 지리·문화적 거리만큼 육지와 큰 차이를 보인다. 올 추석은 온 가족이 모여 옛 제주의 추석 풍경을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추석 앞두고 분주한 떡집.

제주의 추석은 벌초(소분)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음력 8월 1일부터 추석 직전까지 진행된다. 이러한 풍습은 육지와 상반된다. 육지는 제주와 반대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거나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가시덤불 등이 우거진 중산간에 산소가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차례를 함께 지내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농번기의 명절이라는 점이 다르다. 육지의 경우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아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계절 중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 농번기가 지났다는 의미다. 제주는 이와 반대다. 제주의 밭농사는 조, 콩, 메일 등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햇 곡식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8월 중순이 되면 촐베기 등 소 먹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여서 무척 바빴다고 한다. 제주에서 추석은 축제보다 제사의식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민속놀이를 체험하는 가족.

이러한 분위기는 명절음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의 '제주의 음식문화(2006년)'에는 "상왜떡(빗모양)은 추석명절에도 잘 상하지 않기 때문에 제편보다 이용한다"며 "일반적으로 추석명절의 떡은 정월명절에 비해 간단해 솔변과 절변을 생략하고 송편으로 대치한다"고 설명했다. 송편은 두가지 종류가 있다. 옛 제주목과 정의현 지역에서는 보름달 모양의 '월병'을, 옛 대정현 지역에서는 손바닥 크기의 '조개송편'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렸다.

'걸맹'이라는 행제도 독특하다. 집사자가 제사를 마친 후 종류별로 조금씩 떼어 낸 제수와 불에 태운 지방을 모아 지붕 위에 던지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지역에 따라 순서를 정해 차례로 다니며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만, 당시 집성촌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핵가족화,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이러한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조리희·포계지희를 아시나요?
지금의 줄다리기·술래잡기 형태
공동체 삶 살았던 옛 제주인 모습


제주도의 추석은 육지와 매우 남다른 풍습을 갖고 있다. 잊혀졌거나 사라진 옛 명절 풍습을 소개한다.

'제주문화 엿보기(김동섭·2014년)'에 따르면, 옛 제주인들은 추석 명절에 '조리희(照里戱)'를 즐겼다.

조리희는 '동국여지승람' 등의 고문헌에서 남녀노소가 모여 노래와 춤을 즐기고, 두 패로 나눠 줄을 당기며 승부를 가리는 놀이라고 소개돼 있다. 현대의 줄다리기와 비슷한 형태다.

또 추석에 닭 잡이 놀이(포계지희·捕鷄之戱)를 즐겼다고 고문헌에 적혀 전해지고 있다. 포계지희는 닭과 닭을 잡는 동물을 설정해 닭을 쫓는 과정을 흉내내는 놀이를 말한다. 이 놀이는 지금의 술래잡기와 유사하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마을주민들이 모여 줄다리기, 술래잡기를 하며 '추석맞이 체육대회'를 즐겼던 셈이다. 명절 관습에서도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던 옛 제주인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제주의 추석은 월동준비 시즌으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제주에서 음력 8월은 겨울을 앞두고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제주인들은 이 시기 '촐(목초)베기'를 했다. 쉽게 말하면 소 먹이인데, 산에서 목초를 베어와 2~3일간 바람에 말린 뒤 집으로 운반해 주저리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소는 농사를 짓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던 것 만큼 옛 제주인들은 추석만큼 소의 먹거리를 챙기는 일을 가장 우선했다.

촐베기를 끝낸 다음에야 콩, 메밀, 조 등의 수확이 시작됐다. 가축을 먼저 챙기고 사람을 나중에 챙긴 셈이다. 차례상 치우고 촐 베러 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음력 8월이면 산과 들에 나가 말똥을 주워오는 시기였다. 말똥은 지금처럼 보일러가 보편화 되기 훨씬 이전 옛 제주인들에게 중요한 자원이었다. 도서지역에서는 말똥을 줍기 위해 새벽부터 일찍 이동했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주워 온 말똥을 잘 말려 두면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 동안 불을 때는 원료로 사용했다. 이소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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