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당신이 불러주는 나의 노래

[영화觀] 당신이 불러주는 나의 노래
  • 입력 : 2021. 02.05(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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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 로즈'.

JT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인 '싱 어게인'이 대중들로부터 주목과 사랑을 받고 있다. 수치로 가늠할 수 있는 환대의 지표인 본 방송의 시청률이 10%를 넘겼으니 굉장히 많은 시청자들이 이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다. 또한 독특한 음색으로 화제를 모았던 참가자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무려 조회수 1000만 이상을 기록했다. 최근 몇 년 간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과 종편 채널까지 트로트 오디션이 쉴 새 없이 지속되는 사이 무명 가수들의 낯설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부드럽고 강력하게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 부르는 노래, 두려움과 떨림으로 서 있는 무대라는 '싱 어게인'의 단출한 장치는 노래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잘 알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듣고 보는 재미를 가진 음악 예능으로서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길어야 4분 정도의 시간 동안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하나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카메라로 담기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생생한 어떤 부분들이 그리 많이 희석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볼수록, 들을수록 놀라운 일이다.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가사와 멜로디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노래는 힘이 세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강력하고 피할 도리가 없는 맞닥뜨림이다. 또한 그 바람이 데려다준 곳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감정의 화원이 펼쳐지곤 한다. 내가 언어로 피워내지 못했던 마음의 소란들이 그 화원에는 가득, 곱게 피어나 있다. 또한 노래와 말을 더한 노랫말이라는 아름다운 조어의 시너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놀라운 도구이기도 하다. 노래는 대화를 멈추고 홀로 있기를 택한 이의 깊은 곳까지 울려 퍼져 딱딱하게 굳어가는 마음에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말이 아닌 노래로 하는 힘내라는 말, 보고 싶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꾹 닫힌 입을, 감은 눈을 결국에는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래서 노래가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오랫동안 피어나길 기다렸던 꽃의 개화를 보듯 단시간 안에 그 벅차 오르는 아름다움을 목도하게 된다. 노래를 보고 듣는 다는 것은 생의 여러가지 경험 중 가장 쉽게, 자주 느낄 수 있는 근사한 경험 임에 틀림이 없다.

 드라마 '체르노빌'과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제시 버클리가 주인공을 맡은 '와일드 로즈'는 노래하는 사람 로즈가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는 오프닝 장면부터 로즈가 어떤 사람인지를 관객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준다. 수감 생활을 마친 로즈는 감옥 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전에 만나던 상대와 마치 게토레이를 마시듯 풀밭에서 섹스를 한 뒤 자신의 두 아이를 맡아 준 엄마의 집을 찾는다. 언제나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살아왔던 그녀는 전과자가 되고 나선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는다. 10여년을 노래를 일로 하던 클럽에서는 그녀의 자리가 없어졌고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줄 사람도 찾을 수가 없다. 엄마의 당연한 조언들과 아이들의 침묵은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그녀에게 노래가 아닌 것들을 요구해온다. 그러나 로즈에게 노래를 하는 일은 직업인 동시에 삶이었기에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과 대화를 해나간다. 청중이 팬이 되고 결국은 편이 되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원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전과자이자 싱글맘인 로즈에게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영화 '와일드 로즈'는 신파극이 될 수 있는 무수한 요소들을 담백하게 걷어 내고 로즈의 마음과 목소리에 집중하는 영화다.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그녀의 무대를 내내 기다리고 응원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싱 어게인'의 여러 무대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영화 '와일드 로즈' 속 로즈의 무대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남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이렇게 울어 대는지 생각에 잠겼다. 나이가 들어서 인가, 삶이 힘들어서 인가 생각도 해보았는데 둘 다 이유의 부분이긴 했지만 가장 큰 누선의 버튼은 아니었다. 그건 내가 그 노래의 순간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나누듯 노래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보고 떨림을 알아차리고 노랫말을 이해하고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예술들의 정면을 집중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사람처럼,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친구처럼 나의 소란과 소망을 함께 불러주는 노래 하는 모든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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