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라산 소주 생산 공장이 옹포리에 있는 이유가 궁금하여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옹포리에서 솟아나는 물에는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검증되었다고 한다. 특히 바나듐 성분이 많다는 것은 인체의 신진대사에 꼭 필요한 희귀 미네랄 원소다. 그 기능은 당뇨 혈당을 낮추고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옹포리 물의 진가를 경제적 차원에서 가장 명확하게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옹포리 사람들이 보유한 소중한 자산이 옹기 모양을 닮은 마을 지형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수질의 측면 못지않은 것이 경관적 자원 가치다. 화산섬이라고 하는 제주의 특성 중 하나는 대부분의 하천이 건천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옹포리는 풍부한 수량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활용 가치를 창출 할수 있는 여건이 된다. 그동안 차곡차곡 진행시켜온 옹포천 관광자원화 사업들이 결실을 거두기 위하여 더욱 발전해가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옹포리는 물의 가치보다 포구로서의 가치가 높았다. 1271년 삼별초군이 명월포로 들어왔다는 기록은 현재 옹포리 포구를 의미 한다. 부근에 하나 뿐인 포구라는 뜻으로 옛 지명이 '독개'라고 불렸다. 그러한 환경적 요인에서일까 옛날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어로활동과 해녀들의 물질을 생업으로 살아온 마을이라고 한다. 농사도 지었지만 암반이 많아서 소출을 내기가 힘든 여건. 팔순이 넘는 마을 어르신들의 회고담 속에 옹포리의 정신이 느껴진다. 이른바 금빌레 개척세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밭의 대부분은 빌레왓(암반이 많은 밭)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곡식을 가지고는 식솔들의 끼니를 항상 걱정해야 했던 현실 속에서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외지로 나가 일을 해야 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며 돈을 벌던 분들의 애향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어렵게 번 돈을 고향으로 보내며 '우리처럼 고향을 떠나지 않고 후손들이 살 수 있도록 빌레왓 위에 흙을 사다가 복토해서 금빌레 옥토로 만들어 달라.' 다른 마을보다 좋은 밭을 가지고 말겠다는 마을공동체의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 금빌레 만들기 열풍이 오늘의 풍요로운 옹포리를 있게 한 것. 위대한 애향심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개척정신으로 모든 시련을 극복해내는 불굴의 공동체. 외지에 나가서 번 돈으로 흙을 사들인 옹포리의 역사는 강인한 제주인의 기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옹포리의 가장 대중적인 관광자원은 사계절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적 강점이다. 비양도가 있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이를 집중적으로 견인할 기반 시설이나 포토존 지역이 다양하게 만들어진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너무 작위적인 요소들은 자연스러운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고.
홍창부 이장에게 옹포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개척정신" 불굴의 의지. 금빌레를 만들겠다고 마을공동체가 나섰던 그 마음가짐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내려온 어떤 유전적 기질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앞으로도 마을에 숱한 난관들이 닥치더라도 옹포리 사람들이 보유한 끈기와 극복의지를 가지고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결기.
옹포천의 풍부한 수량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저러한 자원들이 부가가치 높은 마을공동체의 수입원이 될 수 있다면 스스로 복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을 발전을 위한 특화전략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옹포리가 보유한 것들은 대부분 숙원사업의 형태로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실천전략을 짜고 있었다. 행정적 지원이 획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그 성과와 파급력은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수두룩한 마을. 마을공동체의 역량에 대하여 의구심이 든다면 '금빌레 개척의 역사'를 확인하라고 하고 싶다. 늘 후손들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 전하면서.
<시각예술가>
방앗돌이 있는 휴게공간<수채화 79㎝×35㎝>
일주도로에서 포구로 걸어내려 가는 길에 너른 공간을 만났다. 골목들은 옛 모습 그대로 좁은 반면 이런 넓은 공간을 둔 것이 경이롭다. 그 중심에 등나무를 올린 그늘쉼터를 만들었다. 정겹게 눈에 들어온 것은 돌방아. 원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굴려서 여기에다가 놓은 것인지 모르되 오후 햇살을 받은 화면 속 모든 물상이 강력한 시각적 요소를 가진 것들이다. 슬레이트 지붕은 색상으로, 그 아래 시멘트 바른 돌담은 점구성으로, 등나무 줄기는 카오스적 불확정성으로 모든 직선들을 물리치고 있다. 거기에 돌방아는 자신이 가진 무게로 전체를 압도한다. 앞에 굵은 전봇대는 키를 가지고 다른 존재들을 겁박하는 듯하다. 가히 규중칠우쟁론기라고 하는 조선시대 규방문학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여 그렸다. 모두가 자신이 최고라고 한들 화면 속에 들어오면 서로 구도 속에서 상대방을 살려야 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까불고 있었던 것이다. 실용적 쓰임을 다한 돌방아가 마을 안길 쉼터 옆에 놓여 있는 것은 회고와 반추의 시간을 저 쉼터에 앉아 있는 분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점과 선, 면들이 눈부신 광선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며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 그 회화적 궁금증을 그릴 수 있는 독특한 만남이었다. 서로 싸우는 것으로 보이나 실은 상보적인 아름다움이다. 공간감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명암 원근법에 의해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물상과 물상이 결부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례.
방사탑과 비양도<수채화 79㎝×35㎝>
바닷가에 방사탑이 있다. 백중 때에는 밀물에 기단부가 잠길 것 같다. 어떤 불길한 것을 막으려는 소박한 민간신앙.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한 어떤 요소로부터 막아주는 심리적 성벽이기도 하다. 저 방사탑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구체적인 형태. 비양도와 함께 그렸다. 둘이 만나면 어떤 메시지가 발생되게 될 것인가 궁금하여. 연필선이 그대로 일부분 드러나는 느낌을 통하여 방사탑의 형태적 본질과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근경 방사탑과 원경 비양도. 하나는 작으나 가깝고, 하나는 크지만 멀다. 그 사이에 광선이 있다. 하얀 여백광선. 빛을 그리는 방식은 수없이 많으나 채색의 방식 차이에 의하여 그 강렬함은 결과를 달리한다. 간결 담백함을 지녀야 두 개의 존재가 만나서 발생시키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옹포리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비양도는 그 거리보다 중요한 광선 속에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수평선이 있고 그 수평선 위에 섬이 있다. 하늘과 바다가 여백이니 수평선은 섬을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확인 할 수 없는 상항을 만들어 방사탑의 배경으로 삼았다. 묘한 여운이 일어난다. 수없이 많은 교감을 나눴을 것 같은 둘. 바다를 그리지 아니하고서 바다를 느끼게 하고 하늘을 그리지 아니하고서도 하늘을 느끼게 하는 여백의 미에 방사탑과 비양도라는 섬을 투입하였다. 방사탑 위에 조각된 새는 날개를 힘차게 펼쳐서 어떤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듯 하고. 비양도까지 날아갈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