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 붙는 '악(岳)'의 본디 훈은 '올 악(岳)'/'올'은 산이다해발 4374m 몽골 최고봉도 '올'
[한라일보] 이렇게 본다면 '오르다'의 어근은 '올'이고 그 뜻은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동사 '오르다'가 먼저 생기고 거기에서 '오름'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오름'이라면 이것은 '산'이 아니라 '오르다'의 동명사로 '산을 오르다(登山)'의 '등(登)'의 뜻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오르다'의 동명사 '오름'이라는 말에서 '산'을 연상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몽골 최고봉 4374m의 '타반 보그드 올'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처음으로 돌아가서 양주동 박사는 왜 이 '악음(岳音)'을 '오람'으로 풀이했을까? 악(岳)은 오람의 훈독자, 음(音)은 ㅁ의 말음첨가라고 했다. 그 이유로 "악(岳)의 고훈(古訓) '오람'은 제주도의 방언에 현존한 바 마치 가람, 바람, 사람(江 風 人) 등이 가라, 블, 살 등의 명사형인 것과 같이 오람은 오라의 명사형이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악음(岳音)은 구체적으로 금강산을 가리킨다.
이 대목에는 두 가지 쟁점이 추출된다. 첫째는 당시 악(岳)의 훈독이 어땠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첫째 쟁점 훈독이란 악(岳)이 오늘날처럼 '큰 산 악'이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山)이란 말 자체가 한자기 때문이다. 즉, 산 또는 악의 순수한 우리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물론 중세의 우리 고전에서는 '묏부리 악', '큰 뫼 악'이라는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묏부리나 큰 뫼 같이 복합어를 썼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양주동박사의 설명처럼 '오라'라고 했을까? 그것은 현존하는 제주어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이 노래가 지어진 신라 진평왕(서기 584~633) 때에도 그랬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오르다'의 명사형임을 굳이 나타낼 것이라면 '오를 등(登)'이라는 적절한 글자가 있는데 이를 놔두고 '큰 산 악(岳)'을 썼는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이 '큰 산 악(岳)'을 당시에는 '올 악(岳)'이라고 읽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악음(岳音)'의 훈독자는 '올음' 또는 '올-ㅁ'이 되는 것이다.
산봉우리의 ‘우리’도 산, 산+봉+우리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향가 '혜성가'에 나오는 '악음(岳音)'이라는 말에서 '악(岳)'은 '올'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악'을 '큰 산 악'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올 악'일 가능성이 높다. 즉, '올'에 '음'이 붙은 것인데 이것은 '악음(岳音)'을 '악'의 훈독자 '올'에 '음(音)'의 훈독자 'ㅁ'으로 읽으라는 형태로 보인다. 그렇게 읽는다면 '악음(岳音)'은 '올-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단어의 전부요소 또는 단독으로 쓸 경우는 '올' 혹은 '올음', 단독으로 쓰는 경우는 '올음' 또는 '올-ㅁ'이 될 것이다.
이런 유형의 단어가 또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독자라면 지금도 화석어로 남아 있다는 점을 새겨볼 만하다. '산봉우리'는 '산+봉+우리'로 되어 있는 구조다. '산+산+산'이라는 뜻이다. 이건 마치 화석과 같아서 그 의미가 죽어 있는 상태로 박혀 있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제주도에는 아직도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다. '갈올', '물장올', '테역장올', '살손장올', '화장올' 등이 그 것이다.
현대 몽골어에서는 산을 영문표기로 uul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울란바토르에서 가까운 산 중의 하나인 보그드칸산(Bogd Khan Mountain)의 몽골어 표기는 보그드칸올(Богд хан Уул)이다. 지도상 영문 표기로는 보그드칸올(Bogd Khan Uul)이다. 이흐올(Ikh Uul, Их-Уул)은 이흐산, 울란올(Ulaan Uul, Улаан-Уул)은 울란산, 다르항올(Darkhan Uul, Дархан-Уул)은 다르항산이다.
산이 크건 작건, 신령스럽건, 그렇지 않건 산을 의미하는 현대 몽골어는 '올(또는 울)'이다. 몽골어 표기는 уул이고 이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uul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사실 몽골에는 가장 높은 산의 이름도 그 다음으로 높은 산의 이름도 모두 올(uul)로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타반보그드산은 알타이산맥의 북단 중국-러시아 국경, 중국-몽골 국경, 몽골-러시아 국경이 맞닿는 해발 4081m 또는 4104m의 산이다. 인접한 곳에서 3개국이 닿아 있는 것이다. 최고봉은 타반보그드봉인데 러시아어로는 타반 보그드 울라(Таван-Богдо-Ула, Tavan-Bogdo-Ula), 몽골어로 타반 보그드 올(Таван Богд Уул, Tavan Bogd Uul), 중국어로 쿠이툰산(奎屯山)이라 한다. 이 산의 최고봉은 해발 4374m로서 중국과 국경이 닿는 곳으로 몽골어로 나이람달 어르길이라고도 하며, 몽골 공식명칭은 나이람달올(Nairamdal Uul, Найрамдал Уул)이다. 몽골 최고봉이다. 참바가라브올(Tsambagarav uul)의 최고봉은 해발 4193m의 차스트올(Tsast uul)이다. 수타이올(Сутай хайрхан уул, Sutai khairkhan uul)은 고비-알타이산맥에 있으며 해발 4220m이다.
그러면 이 uul은 현지 몽골인은 어떻게 발음할까? 한글로는 받아 적기가 곤란하게 들리는데 '오올'이라고 들리기도 하고, '올', '우르-', '오르-ㅎ', '오-ㄹ-ㅊ'로 들리기도 한다. 지금 제주어에서 쓰는 '오름'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올' 또는 '오오르'처럼 들리게 발음하는 경우는 흔하다.
혜성가의 '악음(岳音)'에서 나타나는 두 번째 쟁점으로 과연 오름이 일부에서 설명하듯이 자그마한 산 또는 분화구가 있는 소화산체를 지칭하는가이다.
혜성가에 나오는 '악음(岳音)'의 실체는 금강산이라는 점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오름이 결코 자그마한 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