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과거 제주 마을 공동 목장에선 모든 조합원이 동원돼 화입(火入)이 행해졌다. 음력 3월 초순쯤 마소에 빌붙어 사는 병충해를 제거하거나 묵은 풀을 태워 그 자리에 새 풀이 돋아나게 함으로써 우마들의 먹이로 삼으려고 불을 지르던 일이었다. 민속학자 고광민은 "제주4·3사건 전까지는 '화입'이라는 관행이 전승되어 왔다"('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고 했다.
그 관행은 쉬이 끊기지 않았던 것 같다. 1960년대 들어 정부에서는 산불 위험과 지력 약화를 이유로 화입을 원칙적으로 금했다. 제주에서는 '방애'로 불리던 이 같은 방화 행위 금지로 주요 노동력이던 우마의 방목 여건이 제약을 받게 되자 몰래 불을 지르다 산불을 내면서 범죄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지난달 9~12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을 주 무대로 펼쳐진 제주들불축제 주제관에는 이런 내용과 함께 1995년 민선 북제주군수 공약 사항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목야지에 불놓기를 과감히 허용하였다"며 축제의 탄생 배경을 알리는 전시물이 놓였다. 화입이 가능해지면서 양질의 목초를 생산할 수 있게 됐고 불붙는 장면은 볼거리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착안한 게 1997년 2월 첫선을 보인 들불축제라고 소개했다.
불법을 합법적인 것으로 바꾸며 만들어진 들불축제는 그동안 새별오름에 불 놓기가 이뤄졌던 때마다 매번 "성황리에 개최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막을 내렸다. 제주도 최우수축제,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문화관광축제, K-컬쳐 관광이벤트 100선 등 실제 들불축제는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로 여겨져 왔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2007년 이후 제주시가 맡고 있는 이 축제는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1997년 첫해는 정월대보름 풍년 기원 불 놓기 축제였고 1998년(2회)부터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를 내걸었다. 2000년(4회)부터 지금의 새별오름이 고정 축제장이 되었고 2013년(16회)에는 개최 시기를 경칩이 속한 주말로 조정하면서 축제명을 들불축제로 변경했다. 악천후에 강행했던 오름 불 놓기로 인한 문제점 등이 제기됐지만 들불축제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 더욱이 오름 불 놓기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제주에서 열리는 여느 축제와 다를 바 없는데도 비판적 논의가 드물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한층 높아진 시민들의 환경 의식은 들불축제의 근본을 되짚게 하고 있다. 기후위기 영향 등으로 봄철 전국적으로 산불이 잦아지고 있는데 애써 불을 질러 구경거리를 제공하겠다는 발상 말이다. TV 생중계로 새별오름이 불타는 순간을 안방으로 전달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엔 "불태우기로 해충(11%)보다 이로운 곤충(89%)이 죽게 된다"(농촌진흥청)며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대응으로 논·밭두렁 소각을 막고 있다.
일찍이 제주 오름을 다뤘던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엔 새별오름의 명칭이 샛별에 비유된다고 했다. 그래서 한자로도 효성악(曉星岳), 신성악(晨星岳, 新星岳)으로 표기된다는 것이다. 별은 활활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이 난다.<진선희 행정사회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