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시인이자 소설가 한강이 123년 역사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이름으로 새겼다. 아시아 여성으로선 최초다. 이전에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한국 작가는 여럿 있다. 소설가 김동리와 황순원, 그리고 시인 고은까지. 작품의 완성도보다 국제 정치적·문학적 성향과 번역과정에서의 정서적 언어 전달이 늘 걸림돌이었다. 때문에 이번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첫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특히 제주의 아픔인 제주4·3을 다룬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주효했다는 점도 의미 있다.
노벨위원회는 한강의 작품세계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한강은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돼 소설가로 데뷔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2014)와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2021) 등으로 한국 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를 마주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로 지난해 11월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 올해 3월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받았다.
창작은 마치 수도자가 사물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과 깊은 사고를 통해 얻는 깨달음의 과정이다. 쉽지 않은 인고의 시간, 언어의 숙성과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노벨위원회의 평인 "강력한 시적 산문"은 그가 걸어온 작가의 길과 일맥한다. 시를 쓸 줄 알았기에 시인으로 등단했고 소설가로서 인간에 대한, 그리고 사물에 대한 더욱 선 굵은 글들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한강이 인터뷰에 말했던 창작의 궁극적 지향점인 텅 빈 충만함. 부패가 아닌, 발효를 통해 더욱 좋은 성분을 품게 되는, 마지막 글을 퇴고하고 느끼는 창작의 희열에 공감한다.
가을날,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한국문단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온종일 손에서 떨어지지 않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책과 마주하거나, 모바일이나 음성으로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는 이들도 대폭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침체되고 소외된 한국문학에 새로운 '신열'로 작용하기를 독자로서 간절하게 바란다.
이맘쯤이면,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문학청년들이 잠 못 이루는 밤들의 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작고한 제주 출신 고 김재윤 전 국회의원의 '책책책을 읽읍시다' TV코너도 새록하다.
4·3의 진실이 이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더 확산되기를, 그리고 그 진실이 모두에게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란다. 제주4·3유족회 등 55개 단체가 참여한 4·3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강조한 "4·3이 미래와도 작별하지 않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백금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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