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우리 사회가 공정과 상식이란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 생각한다.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들은 십수 장의 PPT 등의 자료를 제출하며 열망을 보인 반면, 홍명보 감독은 아무런 자료 제출 없이 감독에 임명됐다. 최종 후보 3인을 선정할 때도 외국인 감독들은 화상 면접을 거쳐야 했지만 홍 감독은 면담도 없이 1순위에 낙점됐다.
대한축구협회는 특혜 지적이 쏟아지자 입장문을 통해 "홍 감독 경기 스타일을 이미 잘 알고 있다"며 모든 후보에게 일률적으로 똑같은 걸 묻고 요구하는 면담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성난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협회 논리대로라면 공부 습관과 성적을 잘 알고 있는 학생에겐 여타 학생과 다른 방식으로 시험을 쳐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 기저에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절차적으로 흠결이 있어도 월드컵 16강만 올라가면 국민적 분노도 없던 일이 될 것이란 그런 생각 말이다.
의심은 곧 확신이 됐다. 지난 24일 국회 현안질의에서 홍 감독과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 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국회 현안질의가 축구 대표팀 경기력 때문에 열린 것도 아닌데 성적 얘기만 반복했다.
홍 감독 선임 절차를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의 선거 문화가 떠올랐다. 선거 때마다 비상식과 불공정이 끊이지 않으며 선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선거 문화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건 '일단 승리하고 보자'는 그릇된 인식이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테다.
최근 끝난 오영훈 지사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도 이런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선거 때 오 지사 선거캠프 핵심 참모들은 각종 단체의 지지선언을 주도하는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고, 상장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들이 오 지사 공약인 '상장기업 20개 만들기'를 홍보하려 행사에 동원됐다. 공약도 모르면서 무작정 지지선언문에 이름을 올리거나 나도 모르게 이름이 올라간 사례도 있었다. 선거 승리 앞에서 공정과 상식은 외면당했다.
이런 불공정한 선거 행태가 오 지사의 허물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물론 사법적으로 오 지사의 허물은 '벌금 90만원'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의적 책임까지 덮어둘 순 없다. 불법 선거 운동을 주도한 캠프 참모를 주요 공직자로 임명한 이는 오 지사이고, 비상식적인 지지 선언을 등에 업고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도 오 지사다.
오 지사의 말처럼 이번 판결을 '신중한 자세로 제주도민을 위해 봉사하는 계기로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의 공정성과 상식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이상민 행정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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