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햄버거 하나 주문에도 '벌벌'… "모르니 배웁니다"

[현장] 햄버거 하나 주문에도 '벌벌'… "모르니 배웁니다"
고령층 디지털 교육 현장 가 보니
50~70세 훌쩍 넘긴 학생 '열공' 중
도내 디지털배움터 교육 수요 급증
전국 지자체 "교육 늘리자" 움직임
  • 입력 : 2023. 06.18(일) 09:40  수정 : 2023. 06. 21(수) 08:26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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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제주도근로자종합복지관 지하에 있는 '디지털배움터'에서 50~70대를 위한 키오스크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만난 곽도연 강사는 "어르신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키오스크"라고 말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이렇게 생긴 거 보이시나요. 이게 '플레이스토어'예요. 저희가 물 마시고 싶을 때 슈퍼에서 사잖아요. 무료든 유료든 어플은 여기에서 사는 겁니다." 지난 13일 제주도근로자종합복지관 지하에 있는 '디지털배움터'. 곽도연 강사의 말에 머리가 희끗한 교육생들이 손에 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듣고 배운 걸 금세 잊을 세라 미리 챙겨온 수첩에 꼬박꼬박 받아 적기도 했다.

나이 50~70세를 훌쩍 넘긴 '학생' 10여 명이 참여한 이날 교육은 '스마트폰 활용 과정'. 곽 강사의 말대로 "어르신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키오스크'(무인단말기) 교육도 함께 진행됐다. "자신이 없으니까 (키오스크)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최원수(73) 씨처럼 이날 처음 키오스크를 대면한 이들도 많았다.



|어디나 있는 '키오스크'… "불안해요"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서툰 고령층에게 '무인화'는 더 넘기 어려운 벽이다. 몰라도 물어보는 것마저 어렵다. 이는 고령층이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격차'를 크게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서부열(69)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한 번은 햄버거를 먹으러 갔는데 (매장 키오스크를) 할 줄 모르겠더라고요. 제 뒤엔 사람들이 밀려 있고요. 그냥 (말로) 주문하면 안 되겠냐고 하니 직원분이 해 주긴 했어요. 하지만 매번 그러기는 힘들잖아요. 안 해 봤으니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디지털을 모르는 일상은 생활 속 불편, 그 이상이다. 지인을 통해 디지털교육을 알게 돼 찾았다는 강춘자(69) 씨는 "못하니까 불안하다"고 했다. "우리 세대가 '컴퓨터 세대'가 아니잖아요. 컴퓨터가 나오고 나선 제가 바보가 됐어요. 앞이 캄캄해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도 불안하고요. 요즘엔 카페에 가거나 병원에 가도 모두 키오스크가 있으니까. 한두 번 해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념을 모르니 배우러 왔어요."

지난 13일 제주도근로자종합복지관 지하에 있는 '디지털배움터'에서 진행된 교육. 디지털배움터에 따르면 제주지역 교육 수요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어려운 '스마트'한 세상… 교육 수요 급증

디지털이 낯선 고령층에겐 모든 게 '스마트'해지는 세상을 따라가기 어렵다. 이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주민등록인구 5명 중 1명가량이 '65세 이상'(11만5768명, 전체의 17.1%) 노인인 제주에서도 관련 교육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디지털배움터에 따르면 제주도내 교육인원은 2021년 1만3995명에서 2022년 2만7758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도내 디지털배움터 수도 2021년 20곳에서 2022년 35곳, 올해 40곳(제주시 26곳, 서귀포시 14곳)으로 증가했다.

교육의 경험은 빠른 디지털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문화와 정보 등을 접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 작년부터 디지털배움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윤모(59)씨는 "연예인 카페 활동을 한지 만 4년이 됐다"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스마트폰 활용법을 너무 모르니 (카페 활동을 할 때도) 답답한 거예요. 딸한테 매일 물으려니 짜증을 낼 때도 있어 속상하고 서운하더라고요. 그런데 디지털 교육을 받으면서 두려움이 없어진 게 가장 큽니다. 이전까진 어플 하나를 깔 때도 겁부터 났다면 이젠 '플레이스토어'를 알게 되고 필요한 것은 다운 받아서 쓰고 있지요. 어렴풋이나마 배우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지난 13일 제주도근로자종합복지관 지하에 있는 '디지털배움터'에서 곽도연 강사가 교육하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모르면 그만?… 알아야 더 나은 삶 가능"

전문가들은 일상 속 디지털 교육이 지금보다 더 중요해 질 거라고 말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비대면이 강조되고 사회 전반에 디지털 기기가 접목되면서 '모르면 그만'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면서다. 김남영 제주디지털역량센터 센터장은 "'거리두기' 상황에서 (감염 위험성에 사람이) 밀집된 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어르신들은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 게 어려워 반드시 나가야 한다"면서 "예전엔 디지털 기기를 몰라도 살 수 있었다면 이제는 알아야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디지털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제주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에서도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서울시도 그 중 한 곳이다.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인 서울디지털재단이 디지털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운영하는 '어디나 지원단'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지난 13일 제주도근로자종합복지관 지하에 있는 '디지털배움터'에서 스마트폰 활용 교육 등이 진행됐다. 신비비안나 기자

어디나 지원단은 만 55세 이상인 디지털 역량이 있는 시민을 강사로 임명하는 디지털 소외계층 맞춤형 역량강화 사업이다. 올해 150명이 '어르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 관계자는 "(전국에서 운영되는 디지털배움터와 별개로) 노인복지시설, 도서관, 편의시설 등 교육장마다 신청이 들어오면 교육생 수에 맞춰 '어디나 지원단'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면서 "교육생과 강사가 일대일로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고령층의 디지털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선 교육과 함께 일상 속에서 실전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김남영 센터장은 "현재 도내에 체험존 2곳이 운영되고 있지만 제주형 디지털복합체험존을 조성해 교육과 체험을 콜라보하는 교육을 검토해 볼만 하다"면서 “이를 통해 도민들이 실생활에서 디지털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배움터에서 '열공'하는 어르신들. 배운 걸 잊을 세라 꼼꼼히 받아 적기도 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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