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일"… '철거' 제주대 옛 본관 되살아날까

"전례 없는 일"… '철거' 제주대 옛 본관 되살아날까
제주대 '새 100년 상징'으로 복원·재현 논의
지난 7일 전문가토론회 기점 공론화 이을 듯
"껍데기만 같게?" 방식 등 놓고 의견 엇갈려
김일환 총장 "결정 어려워… 숙의 거쳐 추진"
  • 입력 : 2023. 07.09(일) 11:42  수정 : 2023. 07. 10(월) 16:3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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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진기자가 1990년대 초에 찍은 제주대학교 옛 본관. 이 건물은 건축가 고(故) 김중업의 대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한라일보 DB

[한라일보] 약 30년 전에 철거됐던 제주대학교 옛 본관을 복원·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주대학교가 대학의 "새로운 100년의 상징"으로 삼겠다며 관련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다. 건축계에선 제주는 물론 국내에서도 이미 철거한 근현대식 건물을 똑같이 되살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관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복원 방식과 필요성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공론화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제주대 옛 본관, 건립부터 철거까지

제주대 옛 본관은 1970년에 지어졌다. 지금의 아라캠퍼스(제주시 아라1동)로 옮겨오기 전인 용담캠퍼스 시절이다. 제주대로선 시기적으로 상징성이 큰 건물이다. 국립대학으로 승격하던 첫해에 핵심 사업으로 건물 신축이 추진됐다. 지금의 제주대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제주시 용담3동) 자리에 있던 제주대 옛 본관은 4층 규모로 1층에는 학생회관과 식당, 2층에는 도서관, 3층에는 대학 본부와 교수연구실, 4층에는 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었다.

제주대 옛 본관은 건축가 고(故) 김중업(1922~1988)의 대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건축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유일한 한국 제자였던 김중업은 스승의 기능주의적 규칙과 방법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섬이라는 제주의 지역적 조건을 배려한 건물을 세상에 내놨다. "탐라 젊은이들에게 높고 깊은 꿈을 심어주기 위해" 그가 설계한 제주대 옛 본관은 반듯하게 정형화된 건물과 달리 전체가 곡면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멀리서 봤을 때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 같다거나 바다에 떠 있는 배 같았다는 인상으로 오늘날에도 기억되고 있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조개껍질을 펼쳐놓은 듯한 현관, 2층과 3층으로 연결되는 후면경사로의 기하학적 곡선은 해초류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면서 "바다가 가지는 생명력이나 제주도가 가지는 역동적 이미지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적 정서에 맞게 결합시킨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이념이 담긴 건축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주대 옛 본관이 지닌 상징성과 건축사적 의미 등이 무색하게 건물은 지어진 지 30년도 안 돼 철거됐다. 제주대가 1980년 2월 아라캠퍼스로 옮겨간 뒤에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서 노후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 안팎 건축계를 중심으로 보존 운동이 전개됐지만 제주대는 구조안전진단을 근거로 철거에 들어갔다. 1995년 8월의 일이었다.

한라일보 사진기자가 1990년대 초에 찍은 제주대학교 옛 본관. 경사로의 곡선이 인상적이다. 한라일보 DB

|30년 지나 복원·재현 논의 시작

이후 약 30년이 흘러 새로운 논의가 시작됐다. 제주대가 옛 본관 복원·재현을 공론화하면서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김일환 제주대 총장이 옛 본관 복원을 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뒤로 대학 내부에선 관련 논의가 이어져 왔다. 지난해 5월 대학본부 보직교수 등을 중심으로 비공개 토론회를 열린 데 이어 제주대 건축학부 중심으로 정책연구도 이뤄졌다.

지난 7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대 옛 본관 복원·재현 공개토론회'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제주대가 주최하고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선 제주대가 검토한 복원·재현 방안이 공개됐다.

이용규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와 손종남 오피스툴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이날 발표한 검토안을 보면 제주대 옛 본관의 상징성이 있는 경사로 구조물을 일부 복원하는 방식과 구조물 전체를 재현하는 방식이 검토됐다. 제주대 옛 본관을 실제 크기로 재현할 수 있는 곳으로는 아라캠퍼스 안에 4개 부지가 검토됐는데, 이 중에서 대학 후문 골프아카데미 인접 부지가 가능성 있게 제시됐다. 해당 부지에 제주대 옛 본관이 다시 지어질 경우 기업협력 워케이션 공간으로 복합화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됐다.

하지만 제주대 옛 본관을 그대로 짓기 위해선 바뀐 건축법규 등 고려해야 요인이 많은 상황이다. 이용규 교수는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 많다"면서 "(제주대 옛 본관) 도면이 갖춰지더라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기준에 맞지 않는 게 많다"면서 "합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사라진 이야기를 담았는지 논의하는 과정도 중요할 것"이라며 "이것이 사라진 건축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열린 '제주대학교 옛 본관 복원·재현 공개토론회'. 김지은기자

|"껍데기만 똑같게?… 의미 있나"

건물을 철거했던 제주대가 직접 나서면서 옛 본관 복원·재현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방식 등을 놓고는 이견이 감지된다. 제주대 옛 본관이 지닌 가치에 공감하는 측도 원래의 위치가 아닌 아라캠퍼스로 옮겨 '껍데기'만 똑같이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꺼내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제기됐다.

곽재환 칸 건축사사무소(주) 대표는 주제발표를 통해 복원 장소의 문제를 거론했다. 곽 대표는 "제주대 옛 본관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용담캠퍼스에서 태어났다"면서 "파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다 내음이 깊이 스며든 건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대는 이미 아라캠퍼스 내에 복원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 같다"며 "모두 유람선 같다고 기억하는 옛 본관을 왜 한라산 중턱에 정박시키려고 하는지 안타깝다. 보다 개방되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해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복원·재현 장소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석윤 건축사사무소 김건축 대표는 '왜 옛 본관을 복원하려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김 대표는 "폐허가 돼서 흔적이라도 남아있기라도 하면 희망을 볼 수 있겠지만 장소의 기억마저 지워버렸다"면서 "이 시점에서의 복원이나 재현이 건축의 옛 명성을 다시 가져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냈다.

이어 그동안 바뀐 건축이론·생산기술, 가치관 등을 강조하며 부분 복원 또는 장소를 옮긴 재현은 "답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예술로의 복원이나 옛 본관 건축의 상징과 정신을 계승한 제주대의 새 상징 건축물 실현을 제안했다.

지난 7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대학교 옛 본관 복원·재현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김일환 제주대학교 총장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지은기자

|제주대 "천천히 가겠다"… 올해 공론화 계속

제주대 옛 본관 복원·재현에 대해 건축계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제주대로서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게 됐다. 내부적으로 검토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에 제주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주건축가회와 함께 연 전문가 그룹 토론회를 시작으로 학생, 교수, 직원, 동문회를 비롯해 도민 공개 토론회 등을 거치며 공론화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김일환 제주대 총장은 "옛 본관의 역사적인 가치는 크지만 전문가 그룹 안에서도 겉모양만 재현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견부터 그럼에도 옛 본관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까지 찬반이 팽팽하다"면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00년에 걸쳐 짓고 있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이면 지금부터 숙의 과정을 통해 차곡차곡 추진하자는 것"이라면서 "오는 12월까지 도민 공청회 등을 모두 거치면 내년 초에는 방향성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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