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모로코 강진 피해… "참사 현장 그곳에 있었다"

[르포] 모로코 강진 피해… "참사 현장 그곳에 있었다"
'이븐 바투타의 나라, 모로코를 가다'
모로코 강진 피해 (상)
  • 입력 : 2023. 09.14(목) 18:17  수정 : 2023. 09. 17(일) 11:23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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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현지 시각으로 9월 8일 밤 11시 11분쯤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하자 긴급히 대피한 호텔 투숙객들.

[한라일보] 지난 8일(현지 시각) 밤 11시 11분. 그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규모 6.8의 강진이 뒤흔든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말입니다. 제10차 세계지질공원 총회 참석차 모로코 마라케시에 머물던 그는 그날, 그 시간의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유네스코 등록유산관리위원회 지질공원 분과위원 자격으로 세계지질공원 제주 대표단에 함께했던 강시영 사단법인 제주환경문화원장입니다.

기자 출신인 그는 당시 상황을 곧바로 휴대전화에 담았습니다. 30년 취재 경력이 발동했습니다. 그의 전화에 담긴 사진과 기록은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모로코 현지의 막대한 피해 상황에 모두가 마음 아팠고, 한편으로는 제주 대표단의 무사함에 안도했습니다. 어제(13일) 제주로 돌아온 그가 당시 상황을 [르포]로 전해 왔습니다. 이 글은 그의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모로코 마라케시 제주대표단이 묵고 있던 카스바 호텔에서 강진 발생 당시 제주대표단 고정군 박사가 객실에 고립된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

지질공원 총회 참석차 머물던 현지서
규모 6.8 지진 경험… 그날 참상 목격
국내 언론에 현지 피해 상황 전하기도


바로 그 곳에 있었다. 유네스코 제10차 세계지질공원 총회가 열리고 있던 북아프리카 모로코 천년고도 마라케시에 강진이 발생, 엄청난 참사가 빚어졌다. 강진은 현지 시각으로 9월 8일(금) 밤 11시 11분쯤, 한국 시각으로는 9일 토요일 아침 7시11분의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와 모로코의 시차는 8시간. 이번 강진으로 9월 14일 현재 2900여명이 숨지고 55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골든타임을 훌쩍 넘겨 추가 생존자를 발견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진도 6.8의 이번 지진은 규모 면에서 1900년 이후 120여 년 만에 최강 수준이다. 나를 포함한 세계지질공원 제주 대표단은 참사 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다. 강진 발생 당시 머물던 숙소가 큰 피해를 당해 취침 중이던 제주 일행도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긴급히 건물 외곽으로 대피해 화를 면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강진 발생 후 불과 20여 초,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사이에 빚어진 일이었다. 그 숙소에는 제주 대표단 6명과 외국인 수백 명이 투숙하고 있었다.

그 후 제주 대표단은 숙소를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옮겨 지내다가 현지 시각 9월 12일 오전 6시 20분 마라케시 공항을 벗어나 파리를 경유해 귀국했다. 제주에는 한국 시각 13일 오후 2시쯤 도착했다. 강진 발생 나흘 만이었다. 강진 현장에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당시 현장 상황을 휴대폰에 담았다. 취재 경력 30년 가까운 기자 시절 기록의 중요성과 숱한 탐사 취재 경험이 온몸에 체화된 것임을 이번에 새삼 느꼈다.

제주 대표단으로 세계지질공원 총회에 참석한 강시영 원장이 강진 피해 현장에서 속보를 한국에 전송하면서 찍은 사진.

|숙소에 엄습한 강진 피해 순간

강진이 발생한 8일(현지시각) 오후 빡빡한 세계지질공원 스케줄로 제주 대표단은 숙소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각자 2층 객실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잠결에 '쿵! 쿵! 쿵!' 마치 폭격이 가해지는 굉음이 들렸다. 천장에서는 건축물 잔해가 떨어져 침대와 몸으로 밀려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때 객실 바깥에서 "빨리 대피하라"라는 제주 참가단 대표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장 고정군 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입고 있던 반바지 차림으로 서둘러 객실 문을 열었고, 내 손에는 유독 휴대폰만 들려 있었다. 2층 복도는 이미 무너진 건축물 잔해로 쌓여가고 있었다. 그 때 가까운 객실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절규가 들렸다. 고정군 박사는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1층으로 호텔 직원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내달렸다.

나는 갖고 있던 휴대폰에 현장 상황을 정신없이 담았다. 거의 본능적이었다. 건축물이 무너져 내려 복도는 뿌연 먼지 투성이었다. 동료를 구출한 고 박사는 가까스로 건물 바깥으로 함께 대피하는 데 성공했다.

숙소 바깥은 숨 가쁘게 탈출(?)한 투숙객들로 넘치고 있었다. 서로 껴안고 울부짖거나 안타까운 소리를 지르는, 그야말로 혼란과 공포의 현장이었다. 타월만을 몸에 걸치거나 속옷 바람이어서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 모습도 보였다.

긴급히 대피한 호텔 투숙객들이 길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세 차례 피해 속보와 사진 휴대폰 전송

나는 강진 발생 20분쯤 흐른 11시 31분(현지 시각, 한국 시각 9일 오전 7시 31분, 휴대폰에 전송 기간이 기록됨) 기자 후배인 사진작가 강경민에게 짧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소식 1보를 보냈다. "모로코 현지 약 5분 전 진도 규모 6.8 지진 발생, 숙소 건물 피해 투숙객 집단 외곽 대피 중, 총회 참가자 등 초비상, 제주 참가자 모두 대피 중이며 인명 피해 없음." 당시 제주에서 벌초 중이던 강경민은 뒤늦게 내가 보낸 소식 1보를 확인했다.

강경민의 응답을 기다리던 나는 그와 카톡으로 통화 후 현지 상황을 다시 알리고 1보로부터 약 2시간30분쯤 지난 9시 51분(이 역시 휴대폰 저장) 조금 긴 문장의 2보를 보냈다.

* 모로코 마라케시 2보-강시영

"모로코 마라케시 현지 시각 8일 밤 11시를 조금 지난 때였다. 제10차 세계지질공원 총회 제주 대표단이 투숙 중이던 카스바 호텔 이곳저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총회 일정을 오후 늦게까지 소화 후 숙소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에 든지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 갑자기 천장 등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여기저기에서 건물 잔해가 흩어졌다.

이 숙소에는 제주 대표단 6명을 비롯해 다국적인 다수가 머물고 있었다. 건물 요동은 더욱 심해졌고 삽시간 초비상이 걸렸다. 제주 대표단은 일일이 안전을 확인하며 건물 밖으로 대피에 나섰다. 건물 복도는 이미 잔해로 뒤덮이기 시작한 상황. 대표단 중 한 명의 방이 열리지 않았다. 제주 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고정군 박사는 서둘러 호텔 측의 도움을 요청해 동료를 구조 대피시키는 급박한 상황.

호텔 밖은 긴급 대피한 투숙객들로 넘쳐났고,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아찔했던 순간을 쓸어내렸다.

옆에 위치한 호텔도 상황은 비슷. 갑작스런 상황에 호텔은 거의 봉쇄됐으며 대피객들은 밤새 이슬과 더불어 노숙해야 했다. 일부 다국적 대피객들은 생수와 이불을 나누며 인류애를 발휘하기도."

나는 강진 현장 2보와 함께 강진 피해 상황과 노숙하는 사진 7장을 강경민에게 카톡으로 전송했다. 소식을 기다리던 강경민은 "아! 보지 않아도 아찔합니다"라는 코멘트와 더불어 이 소식을 제주 언론에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사진 등으로 제주에는 제주 대표단의 모로코 마라케시 상황이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이어 제주 시각 밤 10시 26분에 세 번째 소식을 사진과 함께 강경민에게 보냈다.

모로코 마라케시 제주대표단이 묵고 있던 카스바 호텔이 지진 피해를 입은 모습.

*모로코 마라케시 3보-강시영

"모로코 강진으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진앙지와 70여 km 인근에서 개최된 제10차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총회도 공식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등 파행. 이곳 시각으로 주말로 예정됐던 지질공원 답사도 현지 피해 등으로 전격 취소.

우리나라 지자체 참가단의 귀국 행렬도 이어지는 등 모로코 마라케시는 출국 러시. 출국을 서두르는 참가단은 사전 항공스케줄에 따른 것이어서 비교적 상황이 나은 편.

밤새 노숙으로 거의 뜬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제주 대표단은 숙소를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 조기 귀국도 검토 중이지만 공항의 분주한 환경과 항공권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표단의 안전에 최우선.

이슬이 맺힌 가운데 여명이 밝아오자 모로코 지진 소식을 접한 가족 등의 전화가 이어지는 등 모로코 지진 상황을 실감.

문제는 숙식 해결은 고사하고 모로코 여러 곳에서 지진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안전지대 이동과 조기 귀국 항공편 확보 등 어느 것 하나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 현재로서는 속수무책인 상황.

세계지질공원 총회가 열리고 있는 마라케시에도 건물 붕괴 등 피해가 속출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확인 불능.

제주 대표단은 일단 독자적 행보보다 총회에 참석한 타 지역 대표단과 연락을 취하는 등 만일의 상황에 적극 대비. 한편 세계지질공원 총회가 열린 건물도 곳곳에 크고 작은 균열로 총회장이 봉쇄된 상태."

강진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제주 대표단의 아찔했던 순간과 당시 생생한 사진이 제주와 국내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나를 포함한 제주 대표단에도 국내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우리는 당시 정신적 충격과 혼란 속에서도 상황을 소상히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글·사진=강시영 사단법인 제주환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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