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주에 교훈 준 독일 화산도시 불칸아이펠과 재회

[현장] 제주에 교훈 준 독일 화산도시 불칸아이펠과 재회
[이븐 바투타의 나라, 모로코를 가다] (4·끝)
슐러 박사 최근 세계지질공원 총회서 만나
20년 전 독일 불칸아이펠 취재 때 첫 인연
  • 입력 : 2023. 09.19(화) 14:52  수정 : 2023. 09. 20(수) 10:41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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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10차 세계지질공원 총회에서 소개 중인 독일 불칸아이펠. 사진=강시영 원장

'훼손 위기' 하논분화구 미래 곱씹는 계기
세계지질공원 모범 사례… 제주에 본보기


[한라일보]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10차 세계지질공원에서 나는 적어도 두 가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을 경험했다. 이미 소식을 전한 대로 마라케시 강진을 만나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것이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현지에서 귀인을 만났다는 사실.

독일 중서부 화산도시 불칸아이펠의 슐러 안드레아스 박사를 총회 현장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와의 인연으로 세계지질공원의 실체를 처음 경험했고, 전지훈련장으로 바뀔 뻔한 서귀포 하논분화구의 미래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때 불칸아이펠과 세계지질공원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그로부터 얻었다. 30년 언론 취재경력을 쌓는 동안 그와의 인연은 그래서 더 각별하다. 그런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그 역시 나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총회 기간 다시 만날 것을 기대했으나 예기치 않은 강진으로 만남은 다시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일에는 현재 세계지질공원이 8개소에 이른다.

2004년 불칸아이펠을 방문했을 때 모습. 왼쪽부터 이석창 서귀포문화사업회 회장, 슐러박사, 베케가든 김봉찬 대표(이상 현재 직함), 필자(강시영 원장).

모로코 마라케시 세계지질공원 총회에서 만난 독일 세계지질공원 불칸아이펠의 슐러 안드레아스 박스. 왼쪽은 필자. 나는 약 20년 전인 2004년 서귀포 하논분화구의 지속가능한 보존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불칸아이펠을 찾아 그와 첫 인연을 맺었다.

|독일 불칸아이펠의 기억

불칸아이펠, 슐러 박사와의 인연은 거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가 2004년. 나는 그때 독일 불칸아이펠로 가서 아주 특별한 경험과 정보를 얻었다.

독일의 중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세계지질공원 '불칸아이펠(Vulkaneifel)'. 2004년에 처음 불칸아이펠을 찾은 것은 훼손 위기에 놓인 서귀포의 '하논'이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하논 분화구 안에 야구 전지훈련장을 건설하려는 논의가 진행되던 때였다. 불칸아이펠 취재에는 이석창 서귀포문화사업회 회장과 김봉찬 베케가든 대표가 함께했다.(현재 직함) 2008년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제주가 세계자연유산이 등재된 직후 세계지질공원 인증에 본격 착수한 시점이었다. 세계지질공원의 모범적 사례를 독일에서 찾은 것이다.

불칸아이펠은 제주의 오름과 마르지형인 서귀포 하논을 떠올리게 한다. 지질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분화구의 한 형태인 '마르'라는 이름은 바로 이곳 불칸아이펠에서 유래됐다. 수백만∼수천만 년에서 최후 빙하기인 1만 년 전의 지구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아이펠은 '불칸벨트'라고 불리는 350여 개의 각종 화산체와 70여 개에 이르는 마르형 분화구의 고장이다. 불칸아이펠은 2000년 유럽 지질공원에 이어 2004년 세계지질공원의 반열에 올랐다. 모두 최초다. 아이펠은 유럽과 글로벌 지질공원 네트워크 태동부터 주목을 받았다. 세계지질공원이 태동한 게 2004년의 일이다.

2004년 불칸아이펠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지오파크를 '지질공원'이 아닌 '지구공원'으로 번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접하는 용어인데다 프로그램도 낯설었다. 지구공원, 지질공원, 지질관광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은 소중한 기회였다. 제주가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추진하던 2008년에 이곳을 다시 찾아 언론에 지질공원 연재를 하기도 했다.

하논 분화구 안에 야구 전지훈련장을 건설하려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 계획은 백지화됐지만 제주의 자연자원 보존과 활용 문제에 경종을 울렸으며, 하마터면 '사고'칠 뻔했다. 그 후 하논은 생태복원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불칸아이펠에는 주제별 박물관이 많다.

|'첫 세계지질공원' 어떤 곳인가

불칸아이펠은 화산을 뜻하는 '불칸'이라는 지명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화산폭발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세계적 화산지대이다.

아이펠에서는 국제적인 석학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지속 가능한 이용적 측면에서도 유럽 전체의 관광객을 위한 지질관광(Geo-Toursim) 등 적극적인 운영 사례가 돋보인다. 지질자원의 다양성을 보전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불어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킨다.

'아이펠'은 산악지대를 의미한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접경지역에서부터 동쪽으로 55㎞ 이상 펼쳐진 곳에 다운(Daun), 게롤슈타인(Gerolstein) 등의 도시가 있는 광활한 지역을 일컫는다. 근대 독일의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라인강의 서쪽, 라인강의 지류 중 하나인 모젤강 북쪽 고원지대에 있는 화산지대이며 약칭으로 '아이펠'이라 부른다.

불칸아이펠은 2000년 유럽지질공원에 이어 2004년 세계지질공원의 반열에 올랐다. 모두 최초다. 아이펠은 유럽과 글로벌 지질공원 네트워크 태동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유럽 수준의 첫 번째 협력사업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기념품 생산, 로고, 소책자, 관광전략 등에 관한 것들이다. 2004년에 들어서는 세계지질공원(GGN)으로 영역이 더욱 확대됐다.

|유럽지질관광의 중심 무대로

내가 이곳을 찾은 20년 전에도 아이펠에서는 마르·화산·광물질·자연사 등 주제별 6개에 이르는 박물관이 화산지대의 생성역사를 안내한다. 박물관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다. 전시공간과 연구동을 갖춘 소규모이지만 아이디어나 그 내용은 알차다. 거의 모두 미니박물관이지만 서로 주제가 달라 지질체험과 관광을 하기에는 제격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곳이 유럽지질관광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다. 또한 지질공원을 보호하기 위해 탐험, 지오파크 가이드의 교육과 훈련, 새로운 직업 창출, 세미나, 방문자 그룹회의 등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아이펠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연간 200여만 명. 이 가운데 약 50만 명은 아이펠에서 2, 3일 동안 체류하며 인류 태고의 신비를 찾아 과거로의 여행에 흠뻑 빠진다. 아이펠투어는 경유형과 보통 2박, 3박의 체류형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숙소인 펜션과 모텔 등에서는 산악 투어와 관련한 각종 자료들이 넉넉히 준비돼 있다.

관광객들은 경관만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하고 체험함으로써 희열을 맛본다. 마르와 호수, 오래된 화산지형의 휴식처, 그외 의 많은 지형들에 호감을 나타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관광객들은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산악투어의 매력에 젖어든다.

불칸아이펠의 중심 타운 '다운(Daun)'.

|삶이 있는 마르의 도시 '다운'

'다운(Daun)'은 불칸아이펠의 중심 타운. 마르분화구 도시다. 인구가 7000여명으로 제주의 읍 소재지 만큼도 안되는 작은 도시이다. 도심에서 불과 자동차로 5분 거리에 거대한 호수가 딸린 마르분화구가 곳곳에 널려 있다. 아이펠의 자랑거리인 마르분화구 주변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대형버스가 수시로 드나들고 관광객들은 이곳 지형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는 표지판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다운 거리에서는 등산용 지팡이와 점퍼 차림의 관광객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젊은이는 물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도 많다. 잘 다듬어진 거리와 화산지형 감상을 어지럽히지 않는 스카이라인, 친절한 안내, 표지판, 화산석으로 치장한 갖가지 조형물들이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국내외 방문객들이 묵는 숙소나 식당, 구멍가게만 한 기념품 판매소에는 이 지역의 명소인 '마르 분화구'를 소개하는 책자와 기념품, 엽서들로 넘쳐난다. 제주 사람들이 오름을 얘기하듯이 다운의 마르 분화구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투영하고 있다.

제주 세계지질공원은 불칸아이펠 못지 않게 자원이 풍부하다. 지질자원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자원이 그렇다. 사람발자국 화석산지, 선사유적지,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갱도진지는 제주의 인류학과 고고학, 역사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핵심 공간이다.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람사르사이트, 세계지질공원에 이르기까지 제주는 이미 국제사회가 공인한 자원들로 널려 있다. 오히려 자원이 넘쳐 고민일 정도다. 이제 제대로 꿰매는 일만 남은 것이다. 글·사진=강시영 사단법인 제주환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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