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복수는 나의 것

[영화觀] 복수는 나의 것
  • 입력 : 2024. 08.16(금) 04: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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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볼버'.

[한라일보]복수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내내 끓어오르던 분노가 차갑게 식는 쾌감? 쌓여 있던 억울함이 해소된 이후의 허무? 하지만 어떤 방식의 복수 후에도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와 억울함으로 얼룩져 있던 당사자의 삶은 복수라는 시기 이후에도 계속된다. 삶은 늘 복잡한 동시에 또 단순해서 뒤엉켜 도무지 풀 수 없던 그 수많은 감정들, 그 아찔한 복수라는 용광로를 끌어안고 있던 이는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복수 후의 누군가도 여전히 자신일 수밖에 없다.

'무뢰한'의 콤비 오승욱 감독과 전도연 배우가 다시 한번 합을 맞춘 영화 '리볼버'는 복수극의 외피를 두른 성장 영화다. 비리 형사 하수영(전도연)이 대가를 약속하고 그것을 저버린 이들을 찾아 나서는 이 복수극은 벼랑 끝에 몰린 한 사람의 네비게이션 없는 로드 무비이자 그가 벼랑에서 다시 산세를 파악하고 발을 디딜 땅을 찾기 위한 지난한 여정 끝에 맞닥뜨리게 되는, '다음의 나'를 찾아가는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리볼버'는 단순하지만 명료하지 않은 영화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로부터 응당 자신에게 주어졌어야 할 '7억원과 아파트'를 받아내겠다는 하수영의 목적은 단순하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그가 맞닥뜨리는 인물들과 상황들 그리고 심지어 자신까지 모든 것들이 명료하지 않다. 배신은 대부분 즉각적으로 명료하다고 느꼈으나 실상은 복잡했던 감정들이 뒤엉킨 상황에서 빚어낸 가장 단순한 결과이고 그 결과의 끝에서 약속의 시작점까지 거슬러 올라 원점을 복구하겠다는 단 한 사람의 무모하고 절실한 마음과 타인들의 알 수 없는 속내들이 부딪혀 벌이는 마찰음이 '리볼버'에는 가득하다. 그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들과 수시로 접촉면을 만들며 생채기와 마모를 감당하겠다는 하수영을 연기하는 배우 전도연은 버석한 인물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섬세한 세공으로 극을 이끈다.

약속은 '맺고 묶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서로 정한 것에서 어긋나는 순간, 그러니까 맺은 것과 묶은 것의 결심과 수고가 사라지는 순간 관계는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하수영은 누군가를 믿어서 했던 약속의 칼에 베인 뒤 이전의 자신을 잃게 된다. 한 번의 약속이 한 사람의 인생에 낸 생채기는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흉터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또다시 언제 누구와 어떤 약속을 하게 될지 스스로를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떤 방식과 형식으로든 자신에게 거짓말이라는 배신을 일삼은 이들과 맞닥뜨린다. 비리 형사인 동시에 두루두루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하수영이지만 그는 적어도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킨이다. 놀라운 건 세상 누구와도 한 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다가서는 사람 정윤선(임지연)이라는 존재다. '난 딱 이만큼만 언니 편이에요'라고 말하는 그는 하수영의 복수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인물이다. 정윤선에게 이만큼이 얼마 만큼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덕분에 관객은 완전히 외롭지 않은 복수의 끝을 목격하게 된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리는 인연이 있기 마련인데 이 점에서 '리볼버'는 끝까지 바닥으로 향하지 않으려는 하수영의 의지처럼 완전히 차가워지지는 않는 영화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총이 쥐어진 인물의 복수극에서 유혈이 낭자하고 그로 인해 복수의 쾌감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장르물을 원하기 마련이다. 극장은 안전한 공간이고 스크린 속 주인공은 만들어진 인물이니 이 감정적 유흥에는 위험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들의 기대치와는 다른 길을 간 '리볼버'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주 한 잔과 꽁치구이 한 점을 천천히 씹는 하수영은 홀로 바닷가에 앉아 스크린 너머를 아득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관객들의 시선은 하수영을 따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어딘가를 내다보게 된다. 복수는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 그 복수는 나의 것이었고 이 삶 또한 나의 것이라는 하수영의 침묵이 보여주는 한 발은 총성보다 크게 마음에 남았다.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직 그의 삶이 끝났다는 징표는 아무것도 없다. 누구의 삶에서도 크게 안심할 순간은 드물겠지만 잠시 안도할 순간은 있을 것이다. 가슴에 품었던 칼을 내려 두고 하늘을 바라볼 그런 순간이.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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