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인가구 리포트] (3) 중장년 1인가구① '낀 세대'의 그림자

[제주 1인가구 리포트] (3) 중장년 1인가구① '낀 세대'의 그림자
낙인 찍힐까 도움도 못 구해… 고독사 위험 커진다 [기획]
  • 입력 : 2024. 09.30(월) 03:30  수정 : 2024. 09. 30(월) 20:36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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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내 중장년 1인가구는 다양한 배경 만큼이나 복합적인 문제에 놓이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사회적 관계 단절 등으로 인한 '고독사'다. 2021년 기준 도내에서 고독사한 44명 중에 절반가량인 21명(48%)이 중장년에 속하는 40~50대였다.

제주 1인가구 37.2% '40~50대'… 전국 최고
이혼·별거, 사업 실패, 질병 등 배경도 다양
"일 안하는 중장년 나태?" 사회적 인식의 벽
"중장년은 미래 노인… 자립 지원 체계 중요"


[한라일보] 서귀포에 사는 40대 남성 A씨는 지난 8월 새로운 직장을 얻어 또 다른 삶을 꾸리고 있다. 바로 이전까진 한 해의 절반을 집에서만 보냈던 그였다.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 왔지만 허리 건강이 악화되자 자연스레 바깥 외출과 멀어졌다. 일을 못하니 다달이 내는 집세와 통신료는 연체됐고, 쌀이 없어 한 끼만 먹으며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지난 4월 그를 찾아간 것은 서귀포시 중문동주민센터다. 서귀포시가 위기 가구를 발굴하기 위해 시행 중인 '복지등기사업'(집배원을 통해 위기 의심가구 발굴)과 보건복지부가 내려보낸 '찾아가는 복지상담' 명단에 A씨의 이름이 오른 게 확인되면서다.

중문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처음 집안에 들어가 보니 불은 다 꺼져 있고 대화를 해도 자포자기 상태였다"며 "곧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복지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다"면서 "나이가 40대로 젊다 보니 주민센터에 와서 상담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센터는 곧바로 A씨의 식사가 가능하도록 후원 물품을 지원했다. 이후 사례 관리를 통해 차상위계층 신청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더 극한 상황에 놓이기 전에 삶의 불씨를 되살린 셈이다.



|배경 다양… 문제도 복합적

A씨처럼 제주에는 혼자 사는 중장년이 많다. 전국 17개 시도 중에 그 비율이 가장 높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1인가구 통계를 보면 2022년 도내 1인가구는 9만2000가구(도내 전체 27만6000가구의 33.4%)로, 이 중 37.2%가 중장년에 속하는 40~50대 가구였다. 이는 전국 평균(28.2%)보다 9%p 높고, 제주 다음 40~50대 1인가구가 많은 울산(33.6%), 경기(31.7%)보다도 최대 5%p 이상 높은 수치다.

중장년 세대가 혼자 살게 되는 배경은 다양하다. 주된 이유는 이혼, 별거 등으로 인한 가족 해체이지만 질병, 사업 실패, 미혼 등으로 1인가구가 되기도 한다. 제주연구원 사회복지연구센터(이하 연구진)가 도내 1인가구 실태·인식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실시한 초점집단면접(FGI)에서도 이 같이 분석됐다.

특히 일부 중장년층은 타 지역에서 이주해 제주에서 혼자 사는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를 삶의 도피처 삼아 떠나오는 사례도 존재한다. 연구진이 지난해 4월 FGI를 진행한 도내 중장년(40~64세) 1인가구 다섯 중 한 명인 B씨도 같은 경우였다.

"사업을 한두 번 하다가 말아먹었어요. 그러다 수급자가 됐는데 수급비도 2달 치 사기를 당했어요. 그러다 보니 모든 대인관계가 다 끊어지고…. 솔직히 자살 시도도 했습니다. 주위에 소문이 났으니 못 견디겠더라고요. 9월에 수급비를 받아 제주에 왔습니다."(FGI 내용 일부)

다양한 배경만큼이나 중장년 1인가구가 겪는 문제도 복합적이다. 혼자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경우엔 일상생활을 비롯해 신체·정신적 건강, 고립 등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과 노인 사이에 소위 '낀 세대'이다 보니 도움을 받기도, 그렇다고 도움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복지 지원이 긴급히 필요한 때에도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을 찾길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권미애 제주시 아라종합사회복지관장은 "노인층과 달리 중장년은 (복지관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복지관에 오는 것을 낙인처럼 생각해 꺼려하기도 한다"면서 경제·심리적 문제를 겪는 중장년 1인가구를 나태하고 게으르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장년은 미래의 노인인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며 "이들의 자립을 지원해 사회의 한 일원이 되도록 하고 건강한 노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독사 급증 제주, '위기 신호' 봐야

중장년 위기 가구를 품는 것은 그다음 세대인 노년기의 문제를 예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고독사'다. 제주에선 올해 4월과 7월 폐업 여관 등에서 고독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70대의 시신이 잇따라 발견된 바 있다.

고독사 문제는 이미 발등의 불이다. 도내 인구 대비 고독사 현황은 전국 수준과 비슷하지만 해마다 발생하는 고독사는 크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처음으로 실시해 발표한 '고독사 실태조사'(5년 주기)에 따르면 도내에서 발생한 고독사는 2017~2019년 매년 12건에서 2020년 27건, 2021건 44건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38.4% 증가했다. 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고독사 발생 현황은 6.6%로 전국 평균과 같았지만, 연평균 증가율은 약 30%p(전국 8.8%) 높게 나타난 것이다.

고독사가 많은 연령은 다름 아닌 중장년이었다. 도내에서 2021년 고독사한 44명의 약 48%(21명)가 40~50대였다. 60대(10명)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70%까지 올라간다. 나머지는 70대와 80대 이상 각각 3명, 30대 1명이었다.

혼자 사는 1인가구의 경우 고독사 위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중장년 1인가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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