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니아]판소리 고법 이수자 김성식씨

[우리는 마니아]판소리 고법 이수자 김성식씨
“국악이 있기에 내 삶도 존재”
  • 입력 : 2005. 05.13(금) 00:00
  • /부미현기자 mhbu@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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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고법 이수자 김성식씨판소리 고법 이수자 김성식씨. 판소리의 본고장 전남 출신으로 현재 제주해양경찰서 제주파출소 소장인 그는 20년이 넘게 북소리에 심취해 직접 고수(鼓手)로 나선 우리음악의 마니아다. /사진=김명선기자mskim@hallailbo.co.kr

 “이것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없다”

 판소리 고법 이수자 제주해양경찰서 제주파출소 김성식 소장(48)은 북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판소리의 본고장 전남출신으로 현직 해경파출소장인 그는 20년이 넘게 북소리에 심취해 직접 고수(鼓手)로 나선 우리음악 마니아다.

 김소장은 국악은 하루이틀 배운다고 깨우칠 수 없으며 정결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음악이라고 정의한다.

 판소리 고법을 익히는데 쏟은 김소장의 애정은 국악인들의 그것에 못지않다. 고등학교 시절 사물놀이패에서 상쇠역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해경 초임시절인 80년대 본격적으로 북을 잡은 뒤 지금껏 소리를 연마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2002년에는 김성래 선생으로부터 고법기능 이수증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용연야밤’ 축제에서 대금산조 명인 죽향 이생강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솔직히 어렸을 때부터 국악을 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때문에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됐을까요. 해경에 들어오면서 일과 함께 음악도 계속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듯이 김소장이 근무하는 파출소에는 언제든지 판소리 음반을 들어볼 수 있는 오디오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사무실 한켠에는 북과 채가 가지런히 모셔져있다. 김소장은 파출소에 찾아오는 민원인들에게 항상 친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의 힘’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난 90년대말 전남 강진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마을 주민 한분의 장례가 있던 날이었는데 마침 상여소리를 할만한 사람이 없었지요. 그때 혹시나 하는 맘에 소리를 해보겠다며 나섰는데 그날 이후 주민들은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한 것 같았습니다”

 투박하기만 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던 주민들이 상여소리를 맡아 해준 김소장에게 큰 신뢰를 갖게 된 것이다. 김소장이 일을 하면서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됐다. 특히 국악을 통해서 엄격한 규율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몸에 익힌 김소장은 친절한 해경의 이미지를 심어주는데도 남다른 기여를 하고 있다.

 실제 이달초 부모허락없이 제주를 찾았다 김소장의 보호조치를 받게 된 10대들이 ‘인생선배’로서 나눈 김소장과의 대화에 감동받은 일화도 있다. 당시 40여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들은 해경홈페이지에 띄운 감사메일을 통해 “열심히 공부해 꼭 보답하겠다”며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속에서 일과 음악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쥔 김소장은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 많다. 국악 보급에 노력하고 있는 제주출신 현희순 선생을 도와 후학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도민들을 위한 저녁 강좌도 계획중이다. 무엇보다도 한때 해경내부에서 추진됐던 사물놀이패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관심을 이끌어볼 생각이다.

 김소장은 “마을 항포구에서 행해지는 풍어제 행사 등에 해경이 사물놀이패와 함께 한다면 우리 문화를 계승시키고 어민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보람된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우리음악 알리기에 최선을 다하는 김소장의 모습에서 ‘음악을 알고 인생을 아는 고수(高手)’의 풍모가 번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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