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문화공간 덩치만 커지나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문화공간 덩치만 커지나
  • 입력 : 2009. 05.12(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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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센터 자문위원 사퇴
도내 문화시설 증가에도
소프트웨어 뒷전인 현실


제주시 연동에 지어지는 '제주종합문화센터'(가칭) 공사 현장은 문을 닫은 채였다. 10월 완공을 목표로 정한 터라 바지런한 망치질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제주종합문화센터'란 이름만 듣고보면 어떤 용도의 건물인가 싶지만 신축 공사장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명료한 정보가 담겨있다. '제주여성문화의 전당'말이다.

'전당'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일 정도로 제주종합문화센터 건립 사업은 여성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발했다. 사업 초기엔 서울에 있는 여성공간 이름을 본따 제주여성플라자로 더 많이 불렸다.

전시관, 공연장, 여성복지시설 등을 두루 갖춘 '종합선물세트'같은 제주종합문화센터 건립은 사업 초기부터 여성문화공간의 성격을 제대로 담고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는 공간에 대한 여성계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업이 종반을 향해가고 있는 이즈음 주요 시설로 꼽히는 제주여성역사문화전시관 자문위원이 사퇴하면서 또한번 논란이 불거졌다. 자문내용 반영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 자문을 구한 절차에 대한 문제가 사퇴 배경중 하나이지만 종내는 도내 문화공간 건립 사업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뜻이 크다.

제주도가 집계해 내놓은 '2008 제주도 문화·관광·교통현황'을 보자. 등록박물관이 40곳에 이르고 공연장이 15곳, 문예회관 1곳, 문화의집 20곳, 문화학교 14곳이다. 개관을 앞두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 한라문화예술회관, 서귀포종합문예회관에다 증가추세인 등록박물관수까지 감안하면 그 수치는 해마다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중엔 지자체가 예산을 대서 탄생한 곳이 여럿 있다. 올해도 문화기반시설 확충에 따른 사업비가 제주지역 문화예산의 절반을 넘길 정도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건립을 주도한 문화공간은 진화하고 있나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령, 20년전에 제주도문예회관을 지었다면 그로부터 20년후 들어서는 한라문화예술회관은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제주종합문화센터가 여성공간을 표방한다면 어떻게 다른 문화시설과 차이를 보일 것인가.

문화공간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길 콘텐츠다. 제주종합문화센터를 이용하게 될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도민들의 만족도를 가늠하는 것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전시물과 체험이다. '제주여성역사문화전시관'이란 그릇에 놓일 내용을 결정할 때 겹겹의 자문이 필요했던 이유다.

제주여성역사문화전시관 자문위원은 사퇴 사유를 언급한 글에서 "2009년 개관할 전시관에 70~80년대초에나 보았던 지루한 형식의 디오라마를 설치해놓고 제주여성신화관으로 만들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고 했다. 제주섬의 문화공간이 덩치만 커진 채 영양상태는 부실한 꼴은 아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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