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빈 집이 예술가를 품다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빈 집이 예술가를 품다
  • 입력 : 2009. 11.10(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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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 빈 집을 창작실로
수 개월 작업 개인전에
마을 주민도 미술 체험


낯선 마을이라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회관 부근에 모여있는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 거기 우리 집이라." 그중 한명이 그 너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마전 서귀포시 월평화훼마을에 거주하며 미술 작업을 진행하는 지민희씨의 개인전을 찾았다. 월평마을회관 뒤편 주택이 '전시장'으로 변해 있었다. 젊은 작가는 그날 전시장(집)을 지키고 있었다. 드르륵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천장에 매달린 모빌 형상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묘비명'이란 이름을 단 그의 개인전은 제주 생활에서 얻은 단상들로 채워졌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에게 제주섬은 원초적인 삶의 공간으로 다가온 것 같다. 제주의 어느 바다에서, 거리에서 주워온 일상의 재료들을 이용해 조용히 설치물로, 영상으로 그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그 집은 지난 여름부터 지씨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만이 아니라 제주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쿵쿵거리는 작가들이 주변에 많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 머물며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나 짐을 챙기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선 월평화훼마을 빈 집에 짐을 풀었다. 손볼 곳이 많은 집이었지만 그런 불편함보다 설레임이 더 컸다.

서귀포시 갤러리 하루와 문화도시공동체 쿠키가 '예술+사람인+집'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이른바 빈 집을 창작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야생 프로젝트'다. 알음알음으로 빈 집에 대한 정보를 구한 뒤 작업실 등으로 제공해오고 있다. 도시든, 농촌이든 늘어가는 빈 집이나 노는 건물은 때때로 사회적 문제와 연결된다. 빈 집을 다양한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면 그같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업이 시작됐다.

공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가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몇몇 사람만 그 혜택을 볼 수 있다. 제주 작가들에겐 그 문이 더 좁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빈 집은 창작실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곳이 될 수 있다.

지자체에서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지원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재산권이 걸린 빈 집을 리모델링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갤러리 하루는 제주도 전역으로 이 프로젝트를 확대해 창작실로, 여행자 쉼터 등으로 빈 집에 온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다.

문화 인프라가 적지 않은 제주지역이지만 지역 주민이 얼마나 체감하는 공간으로 그것들이 기능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지난 10월말에 지민희씨의 개인전이 열릴 때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작가가 거주하는 집을 찾았다. 어떤 이는 백합 한다발을 들고 왔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한 경험이 없는 주민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날 마을에 둥지를 튼 '육지'작가를 통해 미술과 만났다. 빈 집 프로젝트가 불러온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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