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배인과 여인들]조정철과 홍윤애(1)

[제주 유배인과 여인들]조정철과 홍윤애(1)
절망의 나락 속에서 꽃핀 드라마틱한 사랑
  • 입력 : 2012. 06.11(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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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 시해 기도사건에 연루돼 집안이 풍비박산된 뒤 제주에 유배된 조정철은 혹독한 감시 하에 집 밖 출입이 금지된 상태에서 1777~1782년 제주, 1782~1790년 정의현 성읍, 1790~1803년 추자도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에서만 27년을 포함해 30년간 유배된다. 사진은 정의현청 인근 조정철 유배지 추정 터.

정조 시해 미수사건 연루 귀양살이·집안 풍비박산
제주 유배 중 홍윤애와 나눈 사랑 비문으로 남겨

조선의 수많은 유배인 중에서도 조정철(1751-1831)은 가장 드라마틱한 인생을 연출한 인물로 손꼽힌다. 당대 권문세가의 자제로 과거에 급제해 주목을 받던 그는 역모사건에 휘말려 순식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또한 유배지에서는 어떤 유배인들보다 더 치욕스런 귀양살이였지만 감시의 눈을 피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꽃피우다 유배지까지 따라온 정적의 음모로 여인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는 우리 유배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30년의 귀양살이에서도 살아남은 뒤 환갑의 나이에 제주목사로 다시 제주를 찾아 홍윤애와 나눈 사랑을 추억하며 명 비문을 남긴다.

1777년(정조 1년) 7월 28일 밤 홀로 책을 보던 정조는 궁전 지붕 위에서 은은하게 울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이어 기와 조각이 깨지는 소리를 들은 임금은 내시 등을 불러 수색하게 해 침입 흔적을 발견했다.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도승지 홍국영을 급히 부른 정조는 궁궐을 샅샅이 뒤지게 하지만 침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사건은 이튿날 임금을 알현한 대신들이 "도둑이 대내(大內)에 들어오는 수는 진실로 전고(前古)에 있지 않던 변"이라고 했을 만큼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즉위 후 영조 말년 이래 집권해 오던 벽파 일당을 추방해 살얼음 위를 걷던 정조는 경희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궁궐 담장 안팎의 경비를 강화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10여 일 만인 8월 10일 다시 암살자가 침입한다. 천민 출신의 장사 전흥문이 창덕궁 서문 북쪽 담장을 몰래 넘으려다 수포군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정조가 그를 직접 신문한 결과 사도세자의 3남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전군 이찬을 추대해 반역을 꾀하려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이때 국청 조사과정에서 사건의 주범인 홍상범의 여종이 조정철의 집에 드나들었다는 진술이 나오게 된다. 의금부에 투옥돼 조사를 받던 조정철은 결백을 주장하지만 자신을 경계하던 세도가 홍국영과의 악연 때문에 연루 혐의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결국 이 일로 조정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2년 전 이미 숨진 아버지 조영순의 관작이 추탈(追奪·죽은 사람의 죄를 논하여 살았을 때의 벼슬 이름을 깎아 없앰)되는가 하면 그의 형은 유배된다.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은 대부분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조정철은 정조의 배려로 극형을 면한 대신 제주도 유배형에 처했다. 그의 증조부가 영조를 왕위에 옹립하다가 진도에 유배돼 사약을 받은 노론 사대신 중의 한 사람인 조태채였기 때문이다. 증조부의 공로를 참작해 정조는 특별히 은전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여종과 만났던 자신의 잘못으로 집안이 쑥밭이 되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조정철의 부인 홍씨는 여덟 달 된 아들을 두고 목을 매고 말았다.

홍윤애는 역적의 낙인이 찍힌 유배객 조정철을 사랑한 제주 여인이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관리도 아니요, 부귀와 명성을 누리던 양반이나 선비가 아니었다. 조정철은 죄인 중에서도 보통 죄인이 아니라 임금을 시해하려는 음모에 연루된 대역죄인이었다. 살아있으나 산목숨이 아니었으며, 죽어서나 섬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부친의 상중에 제주에 유배된 조정철은 다른 유배인들과는 달리 방안에서 서책만을 읽고 외출은 일절 삼가는 등 그 행동거지를 매우 조심했다. 홍윤애는 그 이웃에 오라버니와 함께 살았는데 부탁을 받아서 그의 의복이며 식사 수발을 도와주게 됐다. 고결한 조정철의 인품에 홍윤애는 사모의 정이 깊어갔고, 조정철도 심지가 깊고 헌신적인 홍윤애를 사랑하게 됐다. 그러나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잠깐의 햇살과도 같았던 이들의 행복은 곧 무서운 폭풍우 속에 휘말리게 된다.

/특별취재팀=표성준기자·김순이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김익수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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