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 기록](8)월정리 본향당 과세문안

[제주당굿 기록](8)월정리 본향당 과세문안
제주여성의 정신 깊숙한 곳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신'
  • 입력 : 2013. 04.11(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 여성의 정신 깊숙한 곳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신'을 확인할 수 있는 제주시 월정리 본향당 과세문안과 김돌산 심방의 모습. 김명선기자

척박한 환경에 살던 여성의 위안이 되는 본향당
바람·구름길로 각 마을의 신들이 모이는 월정리

제주무속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은 제주 동부지역이다. 제주 어디나 바람이 많지만, 이 지역의 바람은 '독하다'는 표현이 나올정도로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 많다. 예전에는 농사짓기가 힘들 정도로 척박한 땅이 많아, 일본으로 육지로 돈을 벌려고 고향을 떠나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척박한 곳인만큼 이곳 주민들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주시 월정리 본향당굿에서는 제주의 여성 정신 안에 이러한 '신'이 자리잡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신삼국 삼대왕 서당국할아버지·할머니와 이들의 일곱자매가 좌정한 곳=예전 월정리 마을에 김씨 할머니가 물질을 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갔는데 낮도 이레, 밤도 이레, 두이레 열나흘이 지난 다음에 해초를 머리에 쓰고 바다에서 나와 지금의 자리에 본향당을 만들고 스스로 심방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어 박씨→고씨→임씨→김씨→김씨→고씨→김돌산씨로 심방의 계보가 이어졌다. 신목이 우거진 곳 중앙에 신삼국 삼대왕과 서당할머니가 좌정을 했고, 오른쪽으로 일곱개의 구멍이 나 있다. 이 구멍의 삼대왕과 서당할머니 사이에 낳은 일곱자매가 좌정한 곳이다.

▶9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심방 김돌산=돌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는 것만봐도 알 수 있듯이 월정리 본향당의 심방인 김돌산(59)씨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 월정리가 고향인 김 심방의 형제는 일곱명이다. 이중에 큰오빠가 26살에, 둘째 오빠가 16살에, 셋째였던 언니가 14살에, 바로 위에 오빠가 1살때 목숨을 잃었다.

김 심방 또한 선천적으로 팔과 다리의 마비증상이 나타나는 소아마비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는 김 심방. 부모는 9번이나 김 심방을 땅속에 묻기 위해 산에 올라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살아있는 김 심방을 확인하고는 집으로 돌아왔고 마지막에는 돼지기름에 불을 붙여 온몸을 그슬리기까지 했단다. 이어 18살이 되던 해에 성읍리 이씨 심방을 만나 심방의 길로 들어섰다. 41살 되던해부터는 월정리 본향당굿을 집전하고 있다

김 심방이 집전하는 본향당굿을 보면 과연 어릴적 소아마비라는 장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여성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중산, 본향단 재단, 재단에 올려진 재물, 액막이 모습.

▶"바람길로 구름길 월정리 본향당 다녀가십서"=본향당을 찾는 단골들이 본향당에 들어가기 전에 상을 차리고 소지를 올려 기도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다. 이를 '중산'이라고 하는데 월정리 마을로 시집온 여성들이, 고향이 멀어 본향당을 찾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별도의 재물을 준비해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중산을 지내는 여성들이 많았지만, 현재는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단다. 김 심방은 "신은 사람과 달리 바람길로 구름길로 다니고, 앉아서 1000리 보고 4만리를 간다. 그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마을로 시집온 여성들도 자신들의 고향의 본향당신을 함께 모신다"고 설명했다.

제주시 한동리에서 월정리로 시집온 한 여성은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나에게 '시댁에 가서도 잊지말고 한동리 본항당신에게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면서 "월정리·한동리 본향당신에게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월정리 본향당굿에 행해지는 날에는 각 마을의 신도 함께 다녀간다. 이들 신이 단골들의 바람처럼 가족의 무사안녕을 얼마나 지켜주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워낙 척박한 자연환경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모든 희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했던 제주의 여성들.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신은 유일한 위안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월정리 본향당의 단골]"정성들여 본향당신을 모시려고 1년을 준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가 고향인 고순자(66·여·인천·사진)씨가 월정리 본향당굿을 찾은 지 3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월정리 출신 남편을 만나 첫째를 낳은 뒤 시어머니를 좇아서 본향당에 다니기 시작한 고씨. 27년전부터는 남편을 따라 인천으로 이주를 하면서 매년 음력 1월 14일이 되면 본향당신에게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월정리 본향당을 찾고 있다.

고씨는 본향당굿을 찾기 위해 1년 정성을 들인단다. 인천에서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1000원, 2000원을 모아 차비를 마련하고, 또 본향당신에게 바칠 재물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액막이가 끝난 뒤 향불을 피우고 있는 고순자씨. 김명선기자

그녀는 "시어머니때부터 아니 그 이전 조상부터 해왔던 일이라 쉽게 그만두기 어렵다. 정성을 들여 본향당신에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해야 한해가 평안한 느낌"이라며 "또 가족에게 궂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액막이도 한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며느리도 자신과 같이 고향을 찾아 함께 본향당신에게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며느리들이 육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풍습이 달라 선뜻 권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향당에 갔다와서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에게 심방에게 들은 점괘를 설명해주면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한다"며 "이렇게 정성을 들여 가족 무사안녕을 위해 희생하는 제주여성의 마음을 며느리들도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고씨의 이런 마음씀씀이를 알고 있는 이 마을 주민들도 그녀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제주 사람들도 바쁘면 못오는데 저 멀리 인천에서 당제가 열릴때면 한해도 빠뜨리지 않고 찾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액막이란 집안 식구 중에 환자가 생기던지, 점괘를 보아 운수가 나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미리 그 나쁜 액을 막는 제의를 말한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28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