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4)동문시장

[골목, 그곳을 탐하다](4)동문시장
사람들의 삶이 옹기종기 모여 장터의 역사 이루네
  • 입력 : 2014. 02.27(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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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인 동문시장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원도심이 침체되면서 활기를 잃었다. 사진은 동문시장(주) 내부. 김지은기자

도내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백화점식 현대시장으로 변신
원도심 침체되면서 활기 잃어…"자생력 갖출 수 있는 대책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장이 선다. 장이 열리는 곳에는 어김 없이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쌓이면 그게 바로 장터의 역사가 된다.

제주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인 동문시장. 이곳의 이야기도 사람들의 삶이 더해질 때 맛이 난다. 옛일을 기억하는 이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장의 역사는 완성된다.

#제주상업의 근거지

동문시장은 도내에서 가장 역사가 긴 상설시장이다.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시작된 제주상업의 근거지였다. 모슬포에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창설돼 육지에서 제주를 찾는 왕래객이 많아지면서 동문상설시장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 대부분의 상품 거래가 이 시장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동문로터리 해병대충혼탑 인근이 당시 시장이 섰던 자리다.

동문시장(주)에서 화북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김경순(76)씨. 김씨에겐 초창기 동문시장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삼베, 무명 등을 마차에 싣고 동문시장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릴 적 살던 곳이 화북인데 당시 마을에 마차를 끌던 사람이 있었어. 어머니는 장에 나가기 위해 몇몇 사람들과 마차를 빌려 짐을 싣고 장터로 향했지. 가는 데만 1~2시간 걸리는 길이었는데 매일 같이 그 일을 하셨다"고 김씨가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던 동문시장의 과거에는 곡절이 많았다. 1954년 같은 해에만 연달아 두 번 화마에 휩싸였다. 당시 화재로 인해 상설시장 내에 건물 145채가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김경순씨는 "어머니를 도와 불에 타지 않은 포목을 잘라내 팔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시장이 불 타는 바람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내팟골에 모여 좌판을 벌이기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한복점을 운영하는 문옥자씨

동문시장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도 이 당시의 일이다. 시장은 화마의 아픔을 딛고 사람들로 북적대던 모습을 찾아갔다. 동문시장(주)에서 한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문옥자(71)씨도 당시 영업을 시작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시장 건물이 신축되기 전부터 같은 곳에서 장사를 했으니 50년 이상 동문시장과 함께하고 있다.

문씨는 "초등학교 다닐 때 언니가 동문로터리에서 양품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컸다"며 "동문시장이 자리를 옮겨 학고방(판자집)으로 지어졌을 때 장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씨의 기억에 동문시장은 365일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었다. "지금에야 제주시내 상권이 여러 곳으로 나눠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동문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설빔을 사러온 사람들로 건물이 미어질 정도였다"고 문씨는 회상했다.

문씨가 장사를 시작한 자리에는 1962년 도내 최초의 백화점식 현대시장인 동문시장(주)가 문을 열었고, 그녀도 새로운 시장 건물에 가게를 얻었다. 설립 당시 포목부, 미곡부, 양품부, 잡화부, 신발부, 식당부 등 두루 갖춘 시장으로 주목을 끈 곳이다. 건물 2층에 동양극장(시네하우스)이 문을 열면서 학생 관람가 영화가 상영될 때면 버스 정류장부터 영화관 입구까지 학생들이 줄지어 서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이곳 상인들은 말한다.

▲동문시장내 국수집.

#화려했던 과거는 어디로…

50년 사이 사람으로 북적이던 동문시장(주) 건물엔 인적이 뜸해졌다. '쇼핑의 1번지'라는 안내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내부엔 적막함이 감돈다. 판매 품목도 단순해졌다. 포목, 직물, 의류, 이불 등의 상품이 주를 이룬다.

건물에 입주해 있는 일부 상인들은 마지 못해 자리를 지킨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30여년 국수 장사를 했다는 동원식당 주인은 "옛날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가 끝나면 이곳에 와서 줄서서 간식을 사먹고 갈 정도 였는데 요즘엔 사람이 없다"며 "시장에 나와도 파는 게 없으니 오히려 돈만 쓰고 가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오랜 시간 동문시장을 지켜온 문옥자씨의 얘기도 마찬가지다. "2000년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돼 종업원을 데리고 일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곳이 없다"며 "장사가 안 되니 젊은 사람들도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60대를 넘겼다"고 문씨는 말했다.

상인들은 한 목소리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손님을 끌기 위한 홍보물 재정비, 시설 개·보수, 할인 이벤트 등이 간간이 진행돼 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마트 공세 속에서도 동문공설시장, 동문수산시장이 선전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제주자치도가 2012년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2011년 동문공설시장은 전년 대비 매출액이 33% 상승했으나 동문시장(주)는 매출액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 상인은 "원도심 자체가 침체되다 보니 상권도 활기를 잃고 있다"며 "도시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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