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건강보고서 메디컬센터](33)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준비

[제주건강보고서 메디컬센터](33)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준비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일… 효율적 대처는 가능
  • 입력 : 2014. 08.22(금)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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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0일 강원도 춘천시 강원효장례문화원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임무수행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기치 못한 사고·질병 사망에 속수무책
가정과 사회는 일상에서 부터 대비책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언젠가 그 죽음의 시간이 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다.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암에 대해서는 암 환자 본인이나 가족,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다. 실험적인 최신 치료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품위있는 죽음이나 완화 의료에 대해서도 알려져 이제는 호스피스나 임종실이라는 말도 생소하지 않다. 일정한 시간을 갖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되는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도 죽음을 맞이 하는 순간 아쉬움과 슬픔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병원 응급실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나 평소 가끔 걱정은 했지만 설마하며 외면했던 질병에 의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 사람과 그 가족들은 더 큰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박현수 교수의 협조를 통해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준비를 알아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죽음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은 다섯 단계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로 나눠진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경우에는 죽음의 다섯 단계가 순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의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모든 감정이 한 번에 뒤섞여 마치 혼란이라는 한 단계만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죽음이라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는 동시에 자신에게만 닥친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가도,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다가 망자(亡者)의 빈 자리에 아리고, 또 그런 생활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대부분 유가족들은 죽음 이후의 장례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음은 물론이고, 때로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울기만 하기도 한다. 아무 느낌 없이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배우자나 자녀의 죽음은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스트레스 중 최악의 스트레스라고 알려져 있다. 이같은 스트레스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거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이러한 정신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가정의 수입원인 가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곧 가족 전체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불행히도 자신의 죽음이 예정된 것일지 갑작스러운 것이 될지 알 수는 없다. 배우자와 사별한 뒤 평생 고생만 하다가 허무하게 갑자기 떠났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났듯이 우리사회는 갑작스런 사고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개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림은 판화가 이철수씨가 세월호 침몰 참사 100일을 맞아 그린'세월호 100'.

박현수 교수에 따르면 평소에 같이 하지 못했던 것들, 해 주지 못한 것들이 갑자기 모두 생각이 난다고 한다. 평소에 지내다가 어디가 불편하다고 얘기했던 것이 불현듯 생각나기도 하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망자의 양말이나 옷가지 같은 사소한 차림새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절약해서 꼭 필요할 때 잘 쓰자고, 날 잡아서 최고의 종합건강검진 받아 보자고 생각하며 미뤘던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낭비를 하거나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일상 속에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은 쓰고, 불편한 것은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라며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무심하게 대하지 말고, 평소에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아쉬운 소리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사회 구성원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사회 전체의 준비도 중요한 부분이다.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시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관련된 사회사업이나 종교계의 관심도 적지 않다. 반면 사고나 급성 질환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위기가정지원사업 처럼 정부의 지원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경제적 도움뿐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다거나 정신건강에 대한 상담을 보다 충실히 수행해 정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또 각종 사고의 예방을 위한 활동이나 법령 제정, 갑작스런 합병증이 생길 수 있는 만성 질환의 효과적인 관리, 응급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응급처치 교육 등도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 이 사회가 해야만 하는 다양한 활동들이라고 소개했다.

4개월 전 '세월호' 침몰사고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됐다. 생존자나 유가족들에 대한 많은 지원이 있었고, 현장에서의 응급 처치와 정신 의학적 상담도 이뤄졌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았고, 또 적절히 대응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와 함께 안타깝게도 사고 직후 현실을 외면하고, 피하려 하는 많은 모습들이 목격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몇몇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갑작스런 사고에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사회가 안전해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지만 사고는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평소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고 이후에는 원인을 분석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결국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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