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김일성 민족과 우리민족끼리

[월요논단]김일성 민족과 우리민족끼리
  • 입력 : 2015. 01.19(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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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치 규범인 '조선노동당 규약',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사회주의 헌법'에는 이해하기 힘든 용어와 표현이 많다. 역사를 땅에 묻고 신화를 만들어 내려는 상징들이다. '김일성조선' '김일성민족' '김일성-김정일헌법' 등도 여기에 해당된다.

북한이 한민족(韓民族)을 김일성민족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초이다. 김일성 사망 100일 담화에서 김일성민족을 언급한 이래 "우리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민족", "핵시험은 김일성조선·김일성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위한 민족적 사변", "인민들은 김일성동지의 후손", "김일성민족의 백년사" 등 거침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우리민족끼리'가 등장한다. 남북정상 간에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에는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해결한다고 되어 있다. 또 북한은 인터넷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만들어 대남심리전을 노골화하고 있다. 국제 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이 사이트를 해킹하여 회원 9000여명의 개인정보를 공개했는데, 2100명은 국내에서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쓴다.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흩어진 민족의 재결합이요, 우리들에게 '아무나(anybodies)'가 아닌 북한 주민은 같은 종족을 뜻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 기내(機內)에서 하신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것"이라는 말씀의 중심에도 민족이 있다. 여기서 민족이란 종족적 특징과 언어, 문화, 역사적 경험 등을 공유하는 한민족(韓民族)이다. 때문에 인위적 단절을 가져오거나, 새로운 민족의 출현은 있을 수 없다.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를 내걸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해 한 일은 없다. 한국인의 민족정서를 자극하여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배타적 민족감정을 부추겨 반미 통일전선을 구축한 것뿐이다. 이런 북한이 2010년 노동당 규약에 우리민족끼리를 집어넣었다. "조선노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중략)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 한다"라고 개정한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를 통일전술로 써먹고 있다는 민낯을 드러낸 증거다. 그래서 김일성민족 동조세력들은 북한의 핵무기는 민족의 자산이요, 북한인권법 제정은 내정간섭이며, 북한의 요구를 받들어 대화하는 것만이 우리민족끼리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내비치자 여론이 분분하다. 김정은이 무례하게 내뱉은 "3년 내 무력통일하겠다", "2015년 통일대전(統一大戰)을 준비하라"는 섬뜩한 호전성은 까맣게 잊고 말이다. 우리는 북한을 통일의 반쪽이자 상생(相生)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접촉했고, 합의문도 만들어 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온갖 희생을 감내하면서 마련한 합의문 가운데 지금 살아 숨 쉬는 게 있는가. 억울하지만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대북관계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원칙이다. 대화는 이를 위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엄청난 현금 뭉치를 지불하고, 막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하며, 정상적인 군대훈련을 중단하라는 전제조건 수용은 대화가 아니고 항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면 북한 핵 문제가 반드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잘 지켜지길 바란다. <문대영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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