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대평리 '선자살롱' 임선자씨

[제주愛 빠지다]대평리 '선자살롱' 임선자씨
"소소한 행복 나누며 예술하고 싶어요"
"여유찾고자 무작정 제주에 왔어요."
  • 입력 : 2015. 04.03(금) 00:00
  •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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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연고도 없는 제주로 정착한 이유를 묻자 임선자(41·여·사진)씨가 말한 대답이다. 임 씨는 수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 후 서울에서 작은 동양화 교습소를 운영해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빠르게 돌아가는 각박한 서울에서의 생활에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꼈다"며 "여유를 즐기면서 예술 활동과 작품 작업에 열중하고 싶은 생각에 무작정 제주에 왔다"고 말했다. 그가 6년 전 제주에 정착한 진짜 이유다.

선자씨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에서 4년째 생활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선자살롱'이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 카페를 개업했을 당시 어려움이 있었다. 경제적인 여건은 둘째치고 카페 이름의 '살롱'이란 문구 때문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살롱'이라는 간판에 적힌 문구를 보고 그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가 '살롱'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일까. 그는 "프랑스 문화에서는 살롱이 단순 사교장이나 오락장이 아닌 남녀와 신분 간의 벽을 깬 대화와 토론의 장이었다"며 "문학공간으로 문화와 지성을 공유하는 아지트와 같은 장소를 마련하고자 살롱이란 문구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삶의 여유 찾기위해 제주행
동양화교습소 경험을 살려
카페 운영하며 재능도 기부


그에게 다른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주위에 제주정착을 위해 내려왔다가 이웃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있었다"며 "나 역시 제주의 '괸당'문화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당연한 환경과 문화의 차이다. 처음 이방인이라는 취급이 힘들지만, 단지 시간이 해결해 주는 제주도민에 대한 편견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 패턴이 빠른 서울과 달리 제주에서는 여유롭게 생활하면서부터 우울증이 찾아왔다"면서 "2~3년차가 제일 힘들고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참고 견뎌내면서 언제부터인가 제주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그는 제주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자신이 교습소를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말에는 여러 지역을 돌며 도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취미활동도 여러 가지 하고 있다. 아프리카 악기인 젬베를 배우고, 미술, 연극, 판소리 등 예술인으로서의 열정을 제주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제주에서의 그려 나갈 꿈에 대해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제주를 찾았지만 제주가 좋아 어느덧 정착 6년차를 맞이했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을 뿐더러 돈을 위해 제주를 찾은 것도 아니다. 단지 예술을 하고 싶었다"며 "제주가 나를 허락하는 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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