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실 칼럼]인문학에 길을 묻다[1]

[고경실 칼럼]인문학에 길을 묻다[1]
①나는 누구인가?
  • 입력 : 2015. 06.01(월) 12:16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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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 각계각층에서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솔솔 불고 있다. 인문학이라면 문학, 철학, 역사를 묶어서 말하고 있다. 이중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국가 최고의 보물이라고 자부할 만큼 문학에 가치를 매기고 있다. 또한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등 철학에 대한 중요성 역시 유럽국가 중 그리스·독일을 중심으로 크게 다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문학에 포함된 이러한 내용들 중에서도 역사야말로 더없이 중요한 분야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 속에는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진화과정이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나의 현 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인문학에 집중해야 하는 궁극적인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와 ‘문학과 철학,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내고 싶다. 즉,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나의 현 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상황판단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불기 2559년을 맞이해서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했다.

부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부처가 특별하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선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계에 걸쳐 고통은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인 나는 온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존귀하고 아름답고 귀하디 귀한 보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 해답은 바로 ‘나는 온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귀하고 유일한 보물이라는 것이다.’ 그럼 보물을 서랍 속에 가만히 놓아두며 썩히는 것과 의미 있는 일에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해답은 명확해 진다. 바로 삼계에 있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에 나를 활용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존귀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나를 인정하고 귀한 보물로 대접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는 나를 이롭게 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 내가 먹고, 입고, 자고, 생활할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인류의 불특정 다수 그들 모두에게, 더불어 나와 경쟁하면서 나의 삶을 단단하게 해주는 사람까지 모두를 포함하여 어느 한 사람도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의 아내, 아이들, 친구들, 동료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려보면 그들이 존재하기에 나의 오늘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 나의 삶이 고귀한 가치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 삼라만상에 있는 생물, 무생물을 포함한 이 지구 또한 그러하고 태양과 달이 그러하면 우주에 무형의 법칙이 그러할 것이다. 땅속에 무심히 기어 다니는 미물이 그러한 것이다.

내 몸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좋은 균들이 있어 소화를 도와주고 배설을 도와주고 있을 것이다. 온갖 병원균의 침입을 막아주고 있을 것이다. 그럼 병원균은 정말 나쁜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쁘다고 하는 균들이 존재하기에 좋은 균들이 우리의 건강한 체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나를 둘러싼 모두가 나를 위해 존재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있어서도 선과 악이라는 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간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류역사의 진화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사회에 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이라는 음지가 존재하기에 양지가 돋보이는 것이다. 만일 음지가 없다면 일정한 존재균형이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성립되는 이치는 눈에 보이는 물체적인 개념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흐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건강성을 유지하면서 존재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이치를 들여다보면 삼라만상에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음이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간지럽게 하는 이것 또한 감사하고 텁텁하게 몸이 무거운데 싱싱한 한잔의 물이 있어 나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 것이다. 이리 마음을 먹고 나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두가 나를 위해 열심히 존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나의 삶 역시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벽돌 한 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며 그 이유가 나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행복하게 해준다.

이제 행복한 삶의 길이 열려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한라산을 오르듯, 장생의 숲길을 가듯, 사려니 숲길을 가듯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기도하면 될 것이다.

인문학은 여기에 답이 있음을 절절하게 느끼며 이미 살았던 선지자들이 소곤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답이 아닌가 싶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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